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도 잘 모르는군요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73) 마리야 파블로브나 : 파벨 1세의 딸(첫번째)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작센-바이마르 대공비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Мария Павловна)
(16 February 1786 [OS 5 February] – 23 June 1859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러시아의 파벨 1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다섯째 아이이자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와 함께 있는 파벨 1세 부부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어린시절부터 그다지 예쁘지 않다는 평가였습니다. 게다가 초기 종두에 의한 흉터도 있었다고 합니다..하지만 그녀는 재능이 뛰어났으며 호기심이 왕성했고 무엇인가를 하려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마리야의 할머니였던 예카테리나 2세는 손녀딸의 재능을 좋아했으며 손녀가 딸이 아니라 아들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특히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피아노를 매우 잘 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뛰어난 작곡가들에게서 사사받기 도 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언니들인 알렉산드라와 옐레나가 시집간 뒤 다음으로 마리야의 차례였습니다. 1800년경 이미 마리야의 혼처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작의 장남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가 마리야의 남편감으로 거론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카를 프리드리히의 어머니는 헤센-다름슈타트의 루이제 아우구스테로 그녀의 가문은 유럽의 여러 왕가와 연결이 되었죠. 카를 프리드리히의 둘째 이모는 프로이센의 왕비였고, 셋째 이모는 바덴 후계자의 부인으로 마리야의 올케언니였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는 카를 프리드리히의 사촌이기도 했습니다. 넷째 이모는 마리야의 아버지였던 파벨 1세의 첫번째 부인인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이기도 했었죠. 아마 이런 관계로 인해서 그는 마리야의 남편감이 되었던듯합니다.
하지만 마리야의 혼담이 정식으로 오가게 된것은 두언니들과 아버지인 파벨 1세가 죽고 난 후인 1803년이었습니다. 1803년 마리야의 남편후보였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카를 프리드리히가 러시아로 왔고 거의 1년간 러시아에 머물렀습니다. 이기간동안 마리야와 카를 프리드리히는 서로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둘이 나중에 결혼했을때 결혼생활에 큰 도움이 되게 됩니다.그리고 카를 프리드리히가 러시아로 온 1년후인 1804년 마리야와 카를 프리드리히는 정식으로 결혼했고 그들은 이후 9개월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지내게 됩니다.
카를 프리드리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중심 도시였던 바이마르에서는 새로운 후계자의 부인에 대해서 매우 기대감이 컸었습니다. 그녀는 당대 강력한 러시아의 여대공이었기 때문이었죠. 오래도록 러시아에서 머물고 있는 후계자와 그 부인이 어서 고국으로 돌아오길 바랬으며 바이마르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고 합니다.그리고 마리야와 카를 프리드리히가 바이마르로 돌아오자 무도회,불꽃놓이 등등 다양햔 행사로 새 신부가 바이마르로 온것을 환영했었습니다.
바이마르 사람들이 마리야에게 기대했던것처럼 마리야의 존재는 공작령에 매우 훌륭한 방어막이 됩니다. 당시는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같은 작은 공작령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에 무척이나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1806년 마리야는 잠시 전쟁을 피해서 슐레스비히 지역으로 가있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1806년 예나 전투 이후 나폴레옹이 유럽을 재편할때 마리야의 시아버지인 카를 아우구스트는 라인 연합에 가입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이때 그가 자신의 영지를 킬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 황제의 여동생이었던 마리야가 며느리였기때문에 러시아의 보호를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이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대해서 전쟁을 시작하자 마리야는 바이마르를 떠냐야했고 한동안 보헤미아에 머물면서 오스트리아의 보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러시아가 그 중심에 있게 되면서 마리야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더 공고히 하면서 바이마르의 이익을 추구했었고 그녀 역시 빈회의에 갔었으며 이때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는 대공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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