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집 딸들이 많은데 사실 알렉산드라 여대공이랑 쌈질하던 딸네미들 이야기만 읽어서 옐레나 여대공은 잘 기억이 안나네요 아하하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72) 옐레나 파블로브나 : 파벨 1세의 딸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Elena of Russia,
Hereditary Grand Duchess of Mecklenburg
Великая Княжна Елена Павловна
(24 December 1784 [OS 13 December] – 24 September 1803)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파벨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네번째 아이이자 두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엘레나의 할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는 가족들에게 절대적 군림을 하고 있었기에 손자들의 양육에도 관여했었는데 손자들은 아들 부부에게서 뺏어갔지만 손녀들은 아들 부부가 키우도록 허락해서 옐레나 역시 자매들과 함께 부모 아래서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여제는 손녀들의 교육에는 관여했었습니다.
엘레나의 부모
파벨 1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옐레나는 태어났을때 매우 예뻐질것이라 여겨졌고 이때문에 여제는 손녀딸에게 너무나 아름다웠던 트로이의 헬렌의 이름을 따서 옐레나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합니다.
옐레나는 다른 자매들처럼 예술에 치중한 교육을 받았으며 또 좋은 혼처로 시집가서 그곳에서 잘 적응하도록 여러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옐레나는 언니인 알렉산드라 여대공과 가장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알렉산드라와 옐레나
엘리자베트 비제-르블룅 작품
옐레나는 언니인 알렉산드라 여대공이 헝가리의 팔라틴인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대공과 혼담이 있을무렵 혼담이 진행됩니다. 그녀의 상대는 독일의 작은 공작가문이었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의 후계자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언니인 알렉산드라는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유대를 위해서 정략결혼했던 반면 엘레나는 작은 공작가문의 남자와 결혼했기에 아마도 언니보다 훨씬 더 편안한 삶을 살수 있으리라 여겨졌을듯합니다.
옐레나의 결혼상대는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로 공작이자 후에 대공이되는 프리드리히 프란츠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매우 잘 교육받았으며 여러곳을 여행했었다고 합니다.
1799년 2월 신랑후보였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가 왔으며 엘레나와 만났고 둘은 자연스럽게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공식 약혼식은 5월이었고 결혼식은 10월 러시아의 가트치나에서 열렸습니다. 그녀가 결혼한 한주뒤에 그녀와 가장 가까운 자매였던 언니 알렉산드라도 결혼했습니다.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옐레나의 남편
옐레나는 남편을 따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중심도시인 슈베린에 왔으며 평온한 결혼생활을 합니다. 그녀는 남편과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며 슈베린에서도 인기있는 인물이 됩니다. 우아하고 다정했으며 자주 남편과 공원을 산책했기에 사람들이 그녀를 많이들 친숙하게 여겼습니다. 게다가 과학등에도 매우 관심을 가지는 여성이기도 했었습니다.
결혼다음해인 1800년 장남인 파울 프리드리히를 낳았고 아마도 그녀와 남편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모두 기쁜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1801년 그녀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 둘을 잃게 됩니다. 바로 언니인 알렉산드라 여대공과 아버지인 파벨 1세였죠.
그리고 1803년 딸인 마리 루이제를 낳습니다만 출산이후 그녀의 건강은 악화됩니다.그리고 그해 9월 옐레나는 심각하게 아프게 되었고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아마도 옐레나는 폐결핵에 걸렸던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에 폐결핵은 매우 위험한 질병이기도 했었습니다. 옐레나가 죽었을때 그녀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 모두는 굉장히 슬퍼했었으며 인기있었던 왕족이었기에 슈베린 사람들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옐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아들인 퍄울 프리드리히는 후에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이 됩니다. 딸인 마리-루이제는 작센-알텐부르크 공작과 결혼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어
위키 미디어 커먼스
더하기
위키 영문판에 보면 옐레나 여대공의 아들인 파울 프리드리히가 정부가 있어서 아이들이 한가득있다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정부와 아이들은 사실 영어판 위키 빼고는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왜 제가 이 말을 쓰냐면 이것은 날조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파울 프리드리히의 정부가 바텐베르크 공비의 언니인 예카테리나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바텐베르크 가문 이야기를 거의 다 읽어봤어도 하우케 가문에서 그런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폴란드 봉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야기도 있고 미국으로 가버린 친척들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런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하여튼 결론은 위키도 다 믿으면 안된다..정도입니다...
(그런데 위키로 글쓰는 나는 뭐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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