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나폴레옹 전쟁때 이야기가 좀더 하고 싶은데 러시아어 위키나 독일 위키에 정도만 나오는모양이네요..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74) 마리야 파블로브나 : 파벨 1세의 딸(두번째)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작센-바이마르 대공비
Grand Duchess Maria Pavlovna of Russia
(Мария Павловна)
(16 February 1786 [OS 5 February] – 23 June 1859
나폴레옹 전쟁이후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자신의 나라가 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에 대해서 여러가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전쟁후 황폐화된 나라를 보고 여러가지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은 전쟁으로 황폐화 된 나라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이런 상황은 마리야 파블로브나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여러가지 자선사업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게 만듭니다. 그녀는 부유한 러시아 여대공이었으며 자신의 재산으로 이런 일들을 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선 사업은 그녀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사랑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또 마리아 파블로브나는 과학이나 예술에 대한 관심도 매우 컸습니다. 그녀는 평생 예술가들과 교류했는데 러시아 시인인 바실리 주코프스키는 물론 독일의 유명한 시인인 쉴러 역시 그녀에게 시를 바치기도 했었습니다. 또 과학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예나 대학교의 훔볼트의 수업을 듣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후에 그녀는 프란츠 리스트를 바이마르로 초청하기도 했고 이런 인연으로 바그너 역시 바이마르에 와서 연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리스트와 바그너는 친구에다가 리스트가 바그너를 잘 돌봐줬는데 이 왠수같은 친구가 리스트의 딸과 덜컥 결혼해버리는....-0-;;;) 작센-바이마르는 예나 대학교가 인근에 있었기에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예나 대학교에 여러가지 기여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바이마르에서 지냈지만 고향인 러시아와의 관계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실 작센-바이마르 같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 러시아라는 강력한 배경은 유용했으며 그녀는 이런 연결고리를 잃고 싶어하지 않았었습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동생인 니콜라이 1세나 미하일 대공과는 나이차가 컸고 이 때문에 동생이 어린싲러에 이미 러시아를 떠나서 동생들과 아주 친한 누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828년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마저 사망한 상황에서 황실 가족들중 가장 연장자였으며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동생들이 누나에게 친밀함을 느끼지 않더라도 존경하는 마음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시아버지인 카를 아우구스트가 죽은 1828년부터 작센-바이마르의 대공비로 활동을 했고 그녀의 활동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남편 카를 프리드리히의 정치적 평가와는 달리 바이마르를 예술과 과학방면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53년 남편인 대공이 죽자 그녀는 관례대로 궁정에서 은퇴해서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은거하는 삶은 아니었는데 1855년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죽고 조카인 알렉산드르 2세가 즉위하자 그녀는 조카의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70대의 고령임에도 러시아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고향을 방문한 마지막이었습니다.
카를 프리드리히
1859년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아팠지만 아들의 생일 전날에는 괜찮아진듯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려했는데 이때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작센-바이마르의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와의 사이에서 네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중 세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큰딸인 마리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헤름 3세의 셋째아들이었던 프로이센의 카를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딸인 아우구스타는 언니의 시아주버니인 프로이센의 빌헬름(후에 황제 빌헬름 1세)와 결혼해서 후에 독일의 황후가 됩니다. 빌헬름 1세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만 궁정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했고 아우구스타와 정략결혼했기에 부부는 매우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심지어 부부는 이혼하려고까지 했는데 둘의 아들인 프리드리히가 부모를 말렸다고...) 아들이자 막내인 카를 알렉산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작센-바이마르의 대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촌인 네덜란드의 소피아와 결혼했었습니다.
사촌인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있는 아우구스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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