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말많은 예카테리나와 안나가 남았군요. 중간에 올가 여대공도 초상화가 있어서 그냥 몇마디 써볼까 싶기도 합니다.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75)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 파벨 1세의 딸 (첫번째)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
올덴부르크 공작부인
뷔르템베르크 왕비
Grand Duchess Catherine Pavlovna of Russia
Екатерина Павловна;
(21 May 1788 [OS 10 May 1788] – 9 January 1819)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파벨 1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여섯번째 아이이자 넷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이 여섯번째 아이를 낳을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예카테리나와 어머니 마리야는 둘다 무사했고 아이는 할머니인 여제의 이름을 따서 예카테리나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는 이전에 딸을 셋을 낳았기에 네번째 딸이 태어난 것에 좀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만 예카테리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로 성장합니다.
자녀들과 함께 있는 파벨 1세 부부
가족에게'카티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예카테리나는 교육을 잘 받았으며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는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웠으며 영리했고 사랑스러웠던 카티야는 엄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가 가장 예뻐한 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10살 이상 차이나는 큰오빠인 알렉산드르가 가장 예뻐한 동생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는 동생에게 과한 애정을 쏟아부었는데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알렉산드르가 동생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주장하기까지 하기도 합니다.
예카테리나
아마 사랑받는 아이였던 예카테리나는 어려서부터 자신감있고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배경은 그녀가 궁정내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선택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큽니다. 예카테리나가 몇몇 남자들과 연애 관계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두 사람은 미하일 페트로비치 돌고루코프와 표트르 이바노비치 바그라티온이었습니다.
미하일 페트로비치 돌고루코프는 돌고루코프 가문 출신으로 알렉산드르 1세의 측근이었습니다만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그의 친척은 편지에서 예카테리나의 오빠였던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총애하는 신하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이 결혼하는 것을 승락했었다라고 언급했었다고 합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 바그라티온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로 그와 예카테리나는 연인이 주고 받는 편지를 받았으며 그는 그녀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그라티온은 그의 아내가 이미 그를 떠났다고 하지만 유부남이었기에 둘이 어느정도 심각한 관계였을지는 잘 알수가 없습니다.
미하일 페트로비치 돌고루코프
하지만 이런 연애 이야기에도 그녀는 갑작스럽게 사촌인 올덴부르크의 게오르그와 1809년 결혼하게 됩니다. 이것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 때문으로 바로 나폴레옹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뒤 후계자와 동맹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아이를 낳아줄수 없는 아내 조제핀과 이혼하고 자신에게 계승자를 낳아줄수 있을뿐만 아니라 강력한 동맹이 될만한 왕녀를 아내로 얻으려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이미 조제핀과 이혼하기 전부터 그의 신부감이 될 여성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죠. 나폴레옹과 탈레랑은 러시아와의 동맹을 추구했으며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여동생을 신붓감으로 얻길 바랍니다. 그리고 적당한 상대가 바로 10대 후반이었던 예카테리나였습니다. 이 상황은 예카테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가 경악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황태후는 딸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벼락부자에게 시집보낼 마음이 전혀없었고 서둘러 딸에게 혼처를 찾았으며 자신의 조카인 올덴부르크의 게오르그를 신랑감으로 선택하죠. 정교회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을 기본적으로 허락하지 않는데도 기어이 사촌인 게오르그와 예카테리나를 결혼시킨것을 보면 상황이 꽤나 급했다고 추정할수도 있습니다. (황제가 허락하면 가능하댑니다.-0-;;;)
예카테리나의 사촌이나 남편이 되는 올덴부르크의 게오르그
올덴부르크 가문은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예카테리나의 할아버지인 표트르 3세 역시 홀슈타인-고토로프 가문 사람이기도 했었습니다. 게오르그의 어머니인 뷔르템베르크의 프레데리케는 예카테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여동생이기도 했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가족에 의해서 게오르그와 결혼했습니다만 둘 사이는 매우 조화로웠고 에카테리나는 남편인 게오르그를 매우 다정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에서는 곧 두명의 아들이 태어납니다만 예카테리나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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