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집중이 됐다 안됐다 그러는데 오늘은 안되는 날입니다..ㅠ.ㅠ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5)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 제임스 3세의 왕비 (두번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제임스 3세의 왕비
Margaret of Denmark
Margrete av Danmark
(23 June 1456 – 14 July 1486),
마르그레테와 제임스 3세의 혼담은 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했는데 스코틀랜드는 덴마크에 지불해야할 돈이 있었으며 제임스 3세가 마르그레테와 결혼한다면 스코틀랜드가 갚아야할 돈을 그녀의 결혼으로 대체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1469년 마르그레테와 제임스 3세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고 다음해인 1469년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의 보증으로 둘의 결혼이 이뤄지게 됩니다. 그리고 둘이 결혼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빚은 대부분 삭감되었죠.
마르그레테는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할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결혼을 통해서 스코틀랜드의 빚을 탕감해준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마 그녀의 "지참금"형태였을것입니다. 그녀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이었으며 보석과 옷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덴마크 고향을 잊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덴마크어를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마르그레테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상냥했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인기있는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르그레테와 제임스 3세의 결혼은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르그레테는 남편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군주이자 통치자이기에 그에게 존경을 표했었으며 후계자를 얻는 의무를 위해 남편과 함께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데 그것은 제임스 3세가 둘째아들을 편애했고 마르그레테는 이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기 때문일듯합니다.이때문에 후에 1482년 이후에 둘은 서로 별거하게 됩니다.
제임스 3세
마르그레테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군주로 생각했으며 군주에 대한 충성으로 남편을 강력히 지원하는 여성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스코틀랜드가 국왕과 귀족들간의 권력투쟁에 있었으며 제임스 3세가 권력을 뺏기기도 하는 등의 일을 당했었기에 그녀의 지지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남편을 지지했었을 것입니다.
마르그레테는 1486년 병을 앓다가 사망했는데 후에 그녀의 아들은 그녀가 독살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독살설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고 합니다.
마르그레테는 제임스 3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장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된 제임스 4세이며 둘째아들은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로스 공작 제임스 스튜어트이고 막내아들은 마 백작이 되는 존 스튜어트라고 합니다. 장남과 차남의 이름이 같은 것은 사실 특이한 경우로 아마도 장남이 심각하게 아팠을때 차남이 태어나서 아마도 장남이 죽는다면 차남에게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려했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임스 4세
마르그레테의 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영국의 왕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7) 잉글랜드의 마거릿 : 제임스 4세의 왕비 (두번째) (0) | 2018.07.19 |
---|---|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6) 잉글랜드의 마거릿 : 제임스 4세의 왕비(첫번째) (0) | 2018.07.12 |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4)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 제임스 3세의 왕비 (첫번째) (0) | 2018.06.28 |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3)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두번째) (0) | 2018.06.21 |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2)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첫번째) (0) | 2018.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