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3)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두번째)

엘아라 2018. 6.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 가족관계가 복잡하니까 글이 느네요 -0-;;;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3)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두번째)




겔데른의 마리아

Mary of Guelders 

Maria van Gelre;

( c. 1434 – 1 December 1463) 


1460년 남편인 제임스 2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10살도 안된 아들 제임스 3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제임스 3세의 어머니였던 겔데른의 마리아는 미성년인 아들의 섭정으로 스코틀랜드 정치에 관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섭정기간은 짧았는데 왜냐면, 남편이 죽은 3년 후인 1463년 마리아 자신도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

마리아의 아들


섭정으로써 마리아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섭정이었던 시기가 바로 잉글랜드의 장미전쟁시기와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익을 위해서 마리아 역시 이 장미 전쟁에 관여하게 됩니다. 왕비의 조언자였던 제임스 케네디 주교는 랭카스터 가문을 지지해야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왕비는 그의 의견을 따르는데 사실 처음에는 왕비는 랭카스터와 요크 가문 둘 다와의 관계를 맺고서 이익을 얻으려 햇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케네디의 씰


1460년대 랭카스터 가문은 요크 가문에 패했고 국왕 헨리 6세는 감금당했고,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는 도망쳤고 스코틀랜드에 까지 도망가기에 이르게 됩니다. 마리아는 이들을요크 가문으로부터 보호해주게 되죠. 이후 마리아는 앙주의 마거릿을 도와 랭카스터 가문이 다시 잉글랜드를 통치할수 있게 하기 위해 군사적 도움을 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이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앙주의 마거릿의 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겔데른의 마리아의 막내딸인 스코틀랜드의 마거릿을 결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헨리 6세와 앙주의 마거릿


하지만 이런 동맹은 다른 외교적 동맹에 의해서 깨지게 됩니다. 바로 요크 가문의 국왕인 에드워드 4세와 부르고뉴 공작인 선량공 필리프가 동맹을 맺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필리프가 프랑스 국왕과 잉글래늗 국왕이 동맹을 맺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또다시 스코틀랜드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리아는 부르고뉴 공작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인물이었으며 부르고뉴 공작이 요크 가문을 지지하고 있는데 마리아가 랭카스터 가문을 지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공작의 압력으로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마리아의 막내딸과의 약혼은 깨지게 됩니다. 


이렇게 랭카스터가문과의 동맹이 깨지자 마리아는 평화를 위해서 요크 가문을 지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맹을 확고히 하는 것과 스코틀랜드의 이익을 위해  그녀는 스스로 에드워드 4세와의 혼담을 진행할수 있다는 여지를 주게 됩니다. 사실 이전에 랭카스터 가문과 스코틀랜드의 연결 고리를 깨기 위해서 에드워드 4세가 마리아에게 청혼한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때 그녀는 이를 거절했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고 이익이 된다면 다시 결혼을 생각할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


하지만 마리아는 1463년 12월 1일 30살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