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2)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첫번째)

엘아라 2018. 6.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부터 복잡한 왕가간의 연결이군요..ㅠ.ㅠ


스코틀랜드의 왕비들...(22) 겔데른의 마리아 : 제임스 2세의 왕비 (첫번째)





겔데른의 마리아

Mary of Guelders 

Maria van Gelre;

( c. 1434 – 1 December 1463) 

스코틀랜드의 왕비로써의 문장



영국식으로 "메리"라고 알려지게 되는 겔데른의 마리아는 겔데른의 공작 아르놀트와 클레베의 카타리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겔데른 공작령은 신성로마제국의 일부로 영지의 대부분은 현재 네덜란드 헬더란드Gelderland지방에 속한다고 합니다. 이 겔데른 공작령은 복잡한 상속관계로 여러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마리아의 할머니가 겔데른 공작의 조카였고 이런 관계로 마리아의 아버지가 겔데른의 공작령을 상속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집안은 에그몬트 집안으로 이 집안은 네덜란드의 고위 귀족가문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에그몬트 가문의 문장


마리아의 부모인 아르놀트와 카타리나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습니다. 겔데른 공작령을 두고 에그몬트 가문과 부르고뉴 공작 이 경쟁관계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고뉴 공작의 후손중 한명이었던 클레벨의 카타리나와 아르놀트가 결혼하면서 지위를 보장한 것이었죠.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부르고뉴 공작의 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모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클레베의 카타리나 


마리아는 외할머니가 부르고뉴 공작의 딸이었기에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에 머물렀으며 당시부르고뉴 공작이었던 선량공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포르투갈의 이사벨이 마리아의 혼담에 관여하게 됩니다. 공작 부부는 마리아를 처음에는 앙주 공작의 아들인 멘 백작 샤를과 약혼시켰습니다만 마리아의 아버지가 지참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 혼담을 깨지게 됩니다. 마리아는 계속해서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에 머물렀으며 이후 부르고뉴 공작 부부는 스코틀랜드와의 결혼협상을 진행합니다. 부르고뉴 공작 부부가 마리아의 지참금을 보증했으며 이렇게 마리아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와 결혼할수 있게 됩니다.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포르투갈의 이사벨



1449년 6월 마리아는 스코틀랜드에 도착했으며 7월 3일 에든버러에서 국왕 제임스 2세와 결혼식을 올렸고 왕비로 대관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자신과 그녀의 아들들이 겔데른 공작령의 계승권을 포기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후 제임스 2세에 의해서 수많은 영지와 성을 받았고 이때문에 부유해졌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제임스 2세가 아내를 경제적으로 독립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것이며 왕비로써의 체면을 유지할수 있게 해준 것일것입니다. 마리아는 매우 부유해졌으며 이런 재산을 바탕으로 많은 왕실 여성들처럼 여러가지 자선사업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병원을 세웠고 종교시설에 많은 기부를 햇었습니다. 



제임스 2세와 마리아


마리아는 제임스 2세와의 사이에서 일곱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성인이 되기전 과부가 됩니다.1460년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에 뺏겼던 록스버러성을 다시 얻기 위해 전투를 했는데 대포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제임스 2세는 이 사고로 사망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