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9)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아내(네번째)

엘아라 2018. 7.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결국 네개를 쓰네요.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9)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아내(네번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Juliane Henriette Ulrike of Saxe-Coburg-Saalfeld  

Grand Duchess Anna Feodorovna of Russia 

(Анна Фёдоровна), 

(23 September 1781 – 15 August 1860),

빈터할터 그림

...그런데 보니까 켄트 공작부인이랑 정말 닮은듯...


안나는 고향으로 돌아오자 콘스탄틴 대공과 정식으로 헤어지길 원하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서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서로 정식으로 헤어지자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안나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고 러시아 황실에서는 이혼을 거부하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안나의 시어머니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콘스탄틴 대공이 안나와 이혼한뒤 마음대로 결혼할것을 두려워했었기 때문으로 결국 둘은 공식적으로 별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안나에게 불리한 상황이었으며 안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쑥덕댈것을 두려워했었다고 합니다만 주변 사람들은 아난에게 동정적이었으며 이런 상황은 안나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용기를 얻게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안나 표도로브나


비록 정식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안나는 러시아와 남편에게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으며, 안나가 이제 자신을 사랑해줄 다른 사람을 찾는데 적극적이 되도록 했을 것입니다. 1808년 10월 안나는 아들을 낳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줄스 가브리엘 에밀 드 세뉴 Jules Gabriel Émile de Seigneux 라는 이름의 프랑스 하급 귀족으로 당시 프로이센 군에 복무중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에두아르트 에드가 슈미트-뢰웬Eduard Edgar Schmidt-Löwe 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아이는 1818년 안나의 동생인 에른스트 1세에 의해서 von Löwenfels 라는 성을 부여받았으며 공작령내의 귀족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나는 1812년 스위스로 가서 루이즈 힐다 아그네스 다우베르Louise Hilda Agnes d'Aubert라는 이름의 딸을 낳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로돌프 아브람 드 쉬펠리  Rodolphe Abraham de Schiferli 라는 이름의 스위스 출신 외과의사이자 교수였던 인물로 1812년부터 1837년까지 안나의 시종무관으로 일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스캔들을 막기 위해 아이는 프랑스 망명 귀족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안나와 쉬펠리의 연애관계가 끝난 뒤에도 둘은 그가 죽을때까지 친한 친구로 지냈었다고 합니다. 


1814년 러시아의 프랑스 침공이 시작 되면서 알렉산드르 1세는 콘스틴틴 대공과 안나가 다시 함께 살길 바랬으며, 콘스탄틴 대공은 안나의 동생인 레오폴트와 함께 아내를 설득하러 왔었지만 안나는 그와 다시 함께 사는 것을 거부햇었다고 합니다. 안나는 스위스 베른 근처에 엘펜나우Elfenau라는 이름의 영지를 구입했고 이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곳에서 안나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안나의 집은 단순히 문화 예술 교류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교관들이 교류하면서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던 곳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1820년 드디어 안나는 콘스탄틴 대공과의 결혼을 무효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콘스탄틴 대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서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기에 거의 20여년간 별거했던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려했던 것일 듯합니다. 둘의 결혼을 무효로한 두달뒤 콘스탄틴 대공은 폴란드 출신의 정부였던 여성과 귀천상혼했습니다.



콘스탄틴 대공


1830년대가 지나면서 안나의 주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합니다. 부모님과 친했던 자매들, 자신을 보호해줬던 시아주버니 알렉산드르 1세와 친했던 동서인 옐리자베타 황후와 입양보내야했던 딸 루이즈와  딸의 아버지이자 오랜 친구였던 쉬펠리 등등을 잃어야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안나가 늘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나는 1860년 자신의 영지에서 사망했습니다.


안나의 아들인 에두아르트는 1835년 베르타 폰 샤우엔슈타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안나의 남동생인 에른스트 1세의 사생아 딸이었으며 둘은 사촌관계였습니다. 둘은 오래도록 살았지만 안나의 딸은 그렇지 못했죠. 안나의 딸인 루이즈는 스위스 정치가였던 에두아르트 다플레스와 결혼했지만 그와 결혼한지 3년만에 사망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안나의 조카이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인 페오도라의 이름을 이 이모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페오도라의 세례명은 안나 페오도라 아우구스테 샤를로테 빌헬미네Anna Feodora Auguste Charlotte Wilhelmine로 안나의 이름을 그대로 땄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이 러시아를 극렬하게 싫어하게 된 원인중 하나도 이 이모가 러시아에서 불행한 결혼을 했던것도 포함될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하노버 가문이 러시아를 싫어했습니다. -0-;;;)



라이닝겐의 페오도라

안나 표도로브나의 조카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