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토크마르 남작은 작센-코보르크-고타 가문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군요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7)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아내(두번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Juliane Henriette Ulrike of Saxe-Coburg-Saalfeld
Grand Duchess Anna Feodorovna of Russia
(Анна Фёдоровна),
(23 September 1781 – 15 August 1860),
율리아네는 작센 가문의 분가 출신이었지만 그녀의 가문은 강력한 통치가문도 아니었으며 가문의 빚도 많았기에 지참금이 많이 필요한 대가문으로 딸들이 시집가는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율리아네의 운명은 결국 부유한 러시아로 향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여제인 예카테리나 2세는 큰 손자인 알렉산드르를 결혼시킨뒤 둘째 손자인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신붓감을 찾게 됩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위의 두 손자인 알렉산드르와 콘스탄틴을 매우 아꼈는데 여제의 큰 구상에서 두 손자를 모두 제위에 올리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큰손자인 알렉산드르는 당연히 러시아를 이어받을 것이었고, 여제는 둘째 손자를 옛 비잔틴 제국의 영지를 병합해서 그곳을 통치하게 하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둘째 손자의 이름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틴'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콘스탄틴 대공
....파벨 1세나 표트르 3세가 파팍 떠오릅니다. -0-;;;
여제의 총애를 받는데다가 제 3 황위계승자였던 콘스탄틴은 유럽에서 인기있는 신랑감중에 하나였으며 곧 수많은 신부후보들이 명단에 올라가게 됩니다. 이를테면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그의 아내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카롤리나의 수많은 딸들 역시 콘스탄틴 대공의 신부감으로 거론되기도 했었습니다.
여제는 신하였던 안드레이 버드베르크 장군을 유럽으로 보내서 신붓감들에 대해서 알아보게 했습니다. 장군은 그의 정확한 목적을 숨긴채 전 유럽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행은 장군이 병이 나게 했으며 병이 난 장군은 코부르크에서 머물게 됩니다. 코부르크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가문의 중심도시였고, 이때문에 공작가문의 궁정 의사인 스토크마르가 러시아 특사인 장군을 진찰하기 위해 왔었죠. 후에 벨기에의 레오폴 1세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부부의 조언자로 활약하게 되는 스토크마르는 버드베르크 장군의 목적을 한눈에 간파했고 그는 장군에게 공작 가문의 딸들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고 장군은 공작의 딸들에 호감을 보이게 됩니다. 결국 장군은 다른 곳을 더 방문하지 않고 러시아에 "훌륭한 신붓감"을 찾았다고 편지를 쓰게 되죠.
스토크마르 남작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도 균형감각이 있는 인물로 여왕과 앨버트공이 남작에게 장남의 교육계획을 보여줬을때 남작은 애 잡을일있냐고 반응했다고.....-0-;;;; (그리고 남작의 평가가 옳았습니다. -0-;;)
여제가 결국 공작의 딸들을 신붓감으로 선택하게 되자 공작부인이었던 아우구스테는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는 한미한 가문으로 자신보다 높은 작센 가문으로 시집왔기에 이제 딸들중 한명이 훨씬 더 높은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다는것에 매우 흥분했을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황실로 시집가면 가문에 도움이 될것이 분명했기에 더욱더 기뻤을 것입니다.
율리아네는 위의 두 언니들과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이 세명중 한명이 콘스탄틴 대공의 아내로 러시아 궁정에 남을 예정이었죠. 재미난 것은 러시아 황실의 이런 신부 선택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중 한명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미노타우르스에게 처녀들을 조공하는것같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율리아네
여제는 공작부인과 세명의 딸들에 대해서 만족했으며 둘째 손자에게 신붓감을 선택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문제는 콘스탄틴 대공은 이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기에 갑작스럽게 신붓감을 선택해야하는 것에 당황했었습니다. 그가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할머니인 여제의 말에 복종해야했기에 결국 그는 세명의 자매들중 가장 어린 율리아네를 자신의 신붓감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이제 콘스탄틴 대공의 아내가 될 율리아네는 러시아 궁정에 남아서 궁정 예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1796년 2월 율리아네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정교회식으로 "안나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개종한지 20일 후인 2월 26일 14살의 율리아네는 16살의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해서 이제 러시아의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가 됩니다.
콘스탄틴 대공
이 결혼은 그녀의 가문에 매우 중요한 이익을 가져다 준 결혼이었습니다. 독일의 작은 공국에 불과했던 작센-코부르크-잘펠트를 유럽에서 외교적으로 중요하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나폴레옹 전쟁때도 러시아 황실과의 연결고리 때문에 그녀의 친정은 나폴레옹 전쟁때도 무사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문에 이익을 가져다준 결혼이 이제 안나 표도로브나가 된 율리아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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