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문득 생각해보니까...
후대로 가면 방계 가문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군요.
일단 파벨 1세의 자녀들중 아들들은 니콜라이 1세에게서 후손이 이어지지만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남성 후손이 없어서 방계 가문이 없거든요. 그런데 니콜라이 1세 후손들부터 방계 가문이 나오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6)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아내 (첫번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Princess Juliane Henriette Ulrike of Saxe-Coburg-Saalfeld
Grand Duchess Anna Feodorovna of Russia
(Анна Фёдоровна),
(23 September 1781 – 15 August 1860),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과결혼해서 안나 표도로브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는 작센 코부르크-잘펠트의 공작 프란츠 프리드리히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로이스 주 에르베스도르프의 아우구스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프란츠 프리드리히
그녀의 가문은 작센 가문의 방계가문중 하나로 작센의 큰 두개의 분가중 장자 계열의 방계가문이었습니다. 이 장자가문은 오래도록 장자 상속제를 실시하지 않아서 많은 분가들을 형성했는데 이후 이 분가들의 후손들이 단절되면서 영지들을 여러번 나누어갖는드으이 재편성을 했고 이때문에 작센 왕국등을 형성한 차자계열보다는 훨씬더 힘이 없었습니다. 율리아네가 태어난 작센-코부르크-잘펠트는 코부르크를 중심으로하는 공작령으영지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이 가문이 다른 독일의 작은 왕가들처럼 강력한 통치가문으로 성장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율리아네의 가문은 전 유럽에 이름을 날리게 되는데 율리아네의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의 혼인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작센-코부르크-잘펠트 영지
율리아네의 아버지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프란츠 프리드리히는 프랑스 혁명전쟁때 영지가 침공당하자 프랑스에 대항해서 싸웠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일의 왕족들처럼 그 역시 가문의 빚을 감당해야해서 나중에 성들의 일부를 팔아야했었기도 합니다.
율리아네의 어머니인 로이스 주 에르베스도르프의 아우구스테는 로이스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로이스 가문은 매우 오래된 독일의 통치 가문중 하나였지만 이 가문 역시 장자 상속제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영지가 엄청나게 쪼개져서 상속되었기에 가문의 일부는 통치 가문의 지위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게 될 정도였고 아우구스테의 집안 역시 그다지 높은 집안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작센 가문의 통치 공작에게 시집갈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다웠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때문에 작센 가문의 통치 공작과 결혼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테
아우구스테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딸을 높은 가문으로 시집보내기 위해서 여기저기 초상화를 보냈고,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의 후계자였던 프란츠 프리드리히가 아우구스테의 초상화를 보고 반해버렸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프란츠 프리드리히에게는 이미 가문에서 정한 혼처가 있었습니다. 역시 작센 가문의 분가였던 작센-힐데부르크하우젠의 조피였고 이것은 사실 복잡한 작센 가문의 분가들의 상속 문제와도 연결되기에 프란츠 프리드리히는 조피와의 결혼을 거부할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1776년 프란츠 프리드리히와 조피는 결혼했죠. 하지만 조피가 결혼 6개월 후에 인플루엔자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홀아비가 된 프란츠 프리드리히는 사랑하는 여인인 아우구스테와 결혼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는데, 이런 선례를 따라 프란츠 프리드리히의 손자였던 앨버트 공은 엇나가는것같은 장남을 위해 매우 아름다운 아내를 얻어주려고 했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18살때의 아우구스테가 모델이 된 그림
프란츠 프리드리히와 아우구스테 사이에서는 열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일곱명이 성인으로 자라났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율리아네의 여동생이었던 빅토리아와 남동생인 레오폴트일 것입니다. 둘은 다 영국 왕가와 연결되는데 레오폴트는 바로 조지 4세의 외동딸이자 후계자였던 샬럿과 결혼했던 인물로 후에 벨기에의 국왕이 됩니다. 빅토리아는 후에 영국의 켄트 공작과 결혼해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가 되었죠. 율리아네의 동생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작이 된 에른스트 1세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의 아버지였습니다. 또 다른 동생인 페르디난트는 코하리 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했고 페르디난트의 아들은 포르투갈 여왕의 남편, 손자는 불가리아의 군주가 되었었죠.
레오폴트와 웨일즈의 샬럿
율리아네의 가문은 이렇게 결혼으로 전 유럽의 왕가와 연결되는 가문이었지만 율리아네가 태어나고 자랐을때는 그리 큰 가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율리아네가 러시아같은 큰 가문으로 시집간것은 가문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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