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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3) 바덴의 루이제 : 알렉산드르 1세의 황후(세번째)
바덴의 루이제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Princess Louise of Baden
Elizabeth Alexeievna
( Елизавета Алексеевна),
(13/24 January 1779 – 4 May/16 May 1826)
옐리자베타의 결혼생활은 곧 불행하게 됩니다. 그녀의 외로움에 대해서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알렉산드르는 점차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을것이며 이런 상황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 대해서 점차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옐리자베타와 알렉산드르가 결혼초에 사이가 좋았지만 아들을 원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바램과 달리 자녀를 바로 얻지 못했고 이것은 여제가 옐리자베타에 대해서 실망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옐리자베타의 시할머니
예카테리나 2세
게다가 예카테리나 2세가 죽고 시아버지인 파벨 1세가 즉위한뒤 옐리자베타의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됩니다. 옐리자베타는 시아버지인 파벨 1세의 궁정에 실망감을 느꼈으며 후에 측근조차도 등을 돌렸던 그의 무자비한 성격에 대해도 실망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가 시할머니인 예카테리나와는 원만한 사이였던것과 연결이 될수도 있을듯합니다. 파벨 1세와 예카테리나 2세는 사이가 나빴고 이런 상황은 옐리자베타가 파벨 1세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는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파벨 1세 역시 큰며느리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여동생인 프레데리케가 스웨덴의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결혼하면서 그녀와 시집식구들의 사이는 더 악화됩니다. 왜냐면 구스타프 4세 아돌프는 이전에 옐리자베타의 시누이였던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의 약혼을 거절하고 도망가버렸기에 여대공과 러시아 황실의 체면을 손상시켰었는데 이런 그와 옐리자베타의 여동생이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시어머니등은 당연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을 것입니다.
루이제의 시어머니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궁정에서 외로움이 점차 더 커져갔으며 결국 궁정에서 의지할 사람을 찾게 됩니다. 처음에는 궁정여성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었으던 바르바라 골로비나 백작부인과 친분을 나누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은 알렉산드르의 궁정인물중 하나로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으며 아마도 옐리자베타는 이런 그녀를 부러워했을 듯합니다. 이후 옐리자베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폴란드 출신으로 알렉산드르 대공의 친한 친구였던 아담 차르토리스키 공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둘의 관계를 보통의 관계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1799년 엘리자베타는 결혼 5년만에 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낳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알렉산드르의 아이가 아니라 그녀의 연인이었던 차르토리스키공의 아이라고 여겨지게 됩니다. 파벨 1세는 아이의 세례식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금발의 푸른눈을 가진 아이의 부모가 검은 머리의 검은 눈을 가진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었죠. 결국 이것은 파벨 1세가 옐리자베타의 연인으로 의심받던 차르토리스키공은 외국으로 보내버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외교임무를 띠고 멀리 가게 되죠. 엘리자베타는 믿고 의지했던 차르토리스키를 떠나 보내야 했을뿐만 아니라 어렵게 얻은 딸마저 잃게 됩니다. 1800년 7월 8일 딸인 마리야는 사망했습니다. 후에 어머니에 보내는 편지에서 옐리자베타는 딸을 잃은 슬픔에 대해서 다른 많은 아이를 준다고 해도 그녀를 대체할수는 없다고 이야기할정도였습니다.
아담 카르토리스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출생에 대한 쑥덕거림은 엘리자베타는 물론 알렉산드르에 대한 비방도 포함되었습니다. 게다가 차르토리스키 공은 알렉산드르의 최측근중 하나였기에 이런 명분으로 그를 보내버린것 역시 정치적인 의도도 다분히 있었을 것이며 이에 대해서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기 보다는 아버지와의 나쁜 관계에 더 집중했을 것입니다. 딸이 죽자 옐리자베타와 알렉산드르는 다시 잠시 가까워지게 됩니다. 아마도 부모로써 아이를 잃은 슬픔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자베타와 알렉산드르의 관계는 또 더 멀어지게 됩니다. 아마도 엘리자베타는 여전히 딸의 죽음을 슬퍼했을테지만 알렉산드르는 이런 슬픔을 떨치려했을 것이고 이것은 그가 아름다운 여성에게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1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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