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1) 바덴의 루이제 : 알렉산드르 1세의 황후(첫번째)

엘아라 2018. 5.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점점 더 아는 사람이군요.

어떻게 할까 고민인데 일단 자식들 순서대로 며느리랑 딸들 다하고, 그다음에 손녀들이야기를 할까 싶습니다.

일단 어짜피 손녀들은 니콜라이 1세의 딸들 셋이랑 미하일 대공의 딸둘(이던가.._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뭐 쓰다보면 무슨 생각이나겠죠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1) 바덴의 루이제 : 알렉산드르 1세의 황후(첫번째)




바덴의 루이제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Princess Louise of Baden 

 Elizabeth Alexeievna

( Елизавета Алексеевна),

(13/24 January 1779 – 4 May/16 May 1826)


후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황후로 엘리자베타 알렉산드로브나 라는 이름을 쓰게 되는 바덴의 루이제 마리아 아우구스테는 바덴의 마르크그라프의 후계자였던 바덴의 카를 루드비히와 그의 아내인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말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바덴의 마르크그라프 지위를 갖는 체링겐 가문House of Zähringen은 가문의 선조가 10세기까지 올라가는 독일의 오래된 통치가문중 하나였습니다 .통치 지역은 현재 스위스와 바덴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문은 두개의 분가가 있었는데 차자 계열이었던 체링겐 공작 가문은 13세기 단절되었지만 장자 계열이었던 바덴의 마르크그라프 가문은 현재까지도 후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문입니다. 이 가문이 바덴의 마르크그라프 지위를 쓰게 된것은 12세기였고, 이후 많은 독일의 통치 가문들처럼 장자상속제를 하지 않아서 수많은 분가들이 생겨납니다만, 루이제의 할아버지였던 카를 프리드리히는 바덴가문의 상속영지를 전부 다시 통합해서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줄타기를 잘했고 결국 바덴을 대공령으로 만들게 됩니다.



루이제의 할아버지

바덴의 대공이 되는 카를 프리드리히



루이제의 아버지였던 바덴의 카를 루드비히는 바덴의 마르크그라프였던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들이자 후계자였습니다. 카를 프리드리히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의 아들인 카를 루드비히는 오래도록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있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의 결혼에 매우 신경썼고 딸들을 높은 가문에 결혼시켰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습니다만 갑작스럽게 사망했었습니다.



루이제의 아버지 

바덴의 카를 루드비히


루이제의 어머니였던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말리는 헤센의 란트그라프 루드비히 10세의 딸이어습니다. 아말리의 시어머니는 헤센-다름슈타트의 카롤리네 루이제로 아말리의 고모이기도 했습니다. 아말리는 여동생인 빌헬미네와 함께 러시아로 가서 파벨 대공과 선을 봤었는데 파벨 대공은 빌헬미네를 선택했었죠. 아말리는 바덴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했는데 시아버지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다가 아이들의 양육은 남편이 주로 맡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지적이었다고 알려져있는데 딸들이 있는 러시아나 스웨덴으로 가서 지내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아말리의 언니인 프레데리케는 프로이센의 왕비이기도 했습니다. 



헤센 다름슈타트의 아말리


루이제의 부모는 여덟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중 아들은 둘이었고 그중 한명은 어린시절 사망했기에 결국 아들은 한명밖에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섯명의 딸들중 다섯 딸들이 결혼했는데 큰언니는 여러번의 혼담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언니인 카롤리네는 비텔스바흐 가문의 상속자였던 막시밀리안 요제프의 두번째 아내가 됩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바이에른의 국왕이 되면서 그녀는 바이에른의 왕비가 됩니다. 카롤리네의 두쌍의 쌍둥이 딸들은 프로이센 왕비, 작센의 왕비들, 오스트리아 황제의 어머니가 되는 유명한 바이에른의 쌍둥이 자매들이었죠.


바덴의 카롤리네

바이에른의 왕비

오스트리아 시씨황후와 오스트리아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외할머니



루이제의 여동생인 프레데리케는 후에 스웨덴의 국왕인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결혼해서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이것은 사실 루이제가 러시아 황제의 아내가 되었기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우호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덴의 프레데리케

스웨덴의 왕비


루이제의 다른 여동생인 마리는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결혼했습니다. 그의 가문은 영국의 하노버 가문과 친척관계였고 그의 어머니는 조지 3세의 여동생이었습니다. 또 그의 누나는 영국의 조지 4세와 사이가 나빴던 아내인 캐롤라인 왕비였죠. 이런 관계덕분에 그는 조지 4세와 친분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당시 프랑스를 상대로 전투에 참가했고 'black duke'라는 별명으로 불릴정도로 용감한 군인이기도 했었습니다. 

루이제의 막내 여동생은 빌헬미네로 후에 다시 사촌이었던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 1세와 결혼합니다. 빌헬미네의 막내딸은 후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와 결혼해서 러시아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바덴의 빌헬미네

헤센의 대공비

빌헬미네의 막내딸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와 결혼합니다.


루이제의 남동생인 카를은 후에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덴의 대공이 됩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명에 따라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친척이었던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와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의미가 강했었죠. 후에 바덴에서 논란이 된 카스파르 하우저가 바로 이 카를과 스테파니 드 보아르네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바덴의 카를

바덴 대공

그에게는 남성 직게후손이 없었고 결국 대공위는 할아버지가 귀천상혼해서 태어난 아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루이제는 갓 태어났을때 매우 연약했으며 이때문에 심지어 의사가 오래 살지 못할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제는 죽지 않았죠. 루이제는 성장하면서 가족들과 매우 가깝게 지냈습니다. 특히 어머니인 아말리와 매우 가까웠고 그녀는 평생 어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지냈었습니다. 

루이제는 매우 잘 교육을 받았는데, 독일어는 당연하고 당대 교양어였던 프랑스어도 배웠고 역사와 지리학, 철학, 프랑스와 독일 문학등을 배웠습니다. 루이제는 프랑스 문화와 에티켓등을 동경했고 잘 배웠습니다만 바덴 가문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기에 호화롭게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자라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졌던 루이제는 일찍부터 그녀의 운명이 결정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