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0)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 파벨 1세의 아내(다섯번째)

엘아라 2018. 4.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로마노프 가문 금방 끝나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황후 한명이 이렇게 긴것을 보니 금방은 안 끝날듯합니다.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60)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 파벨 1세의 아내(다섯번째)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러시아의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

파벨 1세의 황후

Maria Feodorovna 

( Мария Фёдоровна)

 Duchess Sophie Dorothea of Württemberg

(25 October 1759 – 5 November 1828) 


1796년 11월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시어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가 사망하면서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남편인 파벨이 러시아의 파벨 1세로 즉위합니다. 남편이 즉위하면서 마리야는 이제 황후로써 궁정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영향력이 컸으며 이런 그녀의 영향력은 그녀가 궁정에서 중심 인물이 되게 합니다. 



파벨 1세


황후로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가트치나,겨울궁전,짜르스코예 슬로등의 황실 궁전을 자신의 뜻대로 꾸미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궁전들은 이후 황제와 그 가족들의 집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또 황후는 예술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예술에 관련된 기관등을 설립하는데 기여합니다. 또 황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돕는데 열성적이었는데 친척들을 러시아로 초대해서 러시아에서 편안히 살도록 하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

엘리자베트 비제-르블룅 그림


하지만 황후가 되면서 마리야 표도로브나와 파벨 1세의 사이는 벌어지게 됩니다. 파벨은 예카테리나 넬리도바와의 관계를 플라토닉한 관계라고 주장했고 황후 역시 믿었습니다. 하지만 황후가 1798년 막내아들인 미하일을 낳은후 파벨 1세는 19살의 안나 로프키나를 자신의 정부로 삼게 됩니다. 하지만 황제는 넬리도바때처럼 어린 안나 로프키나는 단지 딸처럼 여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이 관계는 역시 오래가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면 1801년 파벨 1세가 암살당하기 때문입니다.


안나 로푸키나


파벨 1세는 어머니의 정치적 동반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을 궁정과 관직에서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강압적으로 이를 시행하려했습니다. 이것은 파벨이 주변 사람들조차 못 믿게 했으며 결국 파벨의 정적들은 물론 측근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에 대한 음모가 일어나게되죠.


1801년 3월 일단의 귀족들이 황제가 있는 성으로 가서 황제를 암살하게 됩니다. 이 상황은 마리야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게다가 귀족들은 황제의 시신을 확인하는 황후에게 위협까지 가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아들인 알렉산드르 1세가 즉위했는데,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황태후로써 궁정의 최고 지위의 여성이 됩니다. 그녀는 며느리인 황후보다더 궁정에서 우선시 되었는데 황태후는 종종 아들인 황제와 함께 나란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황후인 옐리자베타는 그 뒤를 따랐기에 황태후가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후대에도 러시아에서 황태후가 황후보다 지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또 황태후는 궁정에의 살림살이도 장악했기에 결국 황후보다더 황실에서 지위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더 높은 지위임을 모두에게 확인시켰었습니다. 


상복을 입고 있는 마리야 표도로브나 


마리야는 자녀들을 매우 사랑했으며 자녀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어머니였습니다.딸들의 교육과 혼담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들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어린 아들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어머니였습니다. 또 비록 어린시절부터 떨어져서 지냈었지만 위의 두아들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가 딸들의 혼담에 관여하는등의 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이 자신의 딸들중 한명과 결혼하고 싶어하자 이를 반대하고는 딸들을 다른곳으로 시집보내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비록 알렉산드르 1세는 어머니와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머니의 영향력을 받지 않았는데 마리야는 알렉산드르 1세와 나폴레옹이 우호적이었던 초기에도 이미 반 나폴레옹 파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상황이 바뀌기 전까지는 나폴레옹과의 우호를 유지했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장남인 알렉산드르 1세가 사망하고 셋째아들인 니콜라이가 즉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니콜라이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어머니였을뿐만 아니라 손자이자 후계자였던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대공(알렉산드르 2세)의 교육에도 신경썼다고 합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황실의 어른으로 말년을 보냈으며 황실 가족들은 황태후를 매우 존경했기에 이후 그녀는 황실 가족들의 롤모델이 되었으며 그녀가 죽은뒤에 황실에서 많은 이들이 그녀를 기렸다고 합니다.


마리야 표도로브나는 파벨 1세와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중 다섯명의 딸과 네명의 아들이 성인으로 성장했었고 두 아들인 알렉산드르 1세와 니콜라이 1세는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파벨 1세와 마리야 표도로브나 그리고 둘의 자녀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