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7) 포르투갈 독립 전쟁

엘아라 2018. 5.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포르투갈 독립전쟁을 쓰고 있네요

흑 정치문제는 너무 힘들어요...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7) 포르투갈 독립 전쟁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즉위한 60년후인 1640년 12월 1일 포르투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에스파냐에서 보냈던 총독으로 만토바 공작부인이었던 사보이의 마르가리타를 연금하면서 포르투갈의 독립운동이 시작됩니다.



사보이의 마르게리타

만토바 공작부인

포르투갈의 총독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을 합병하던 시기 포르투갈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많은 자치를 부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에스파냐 왕가에서는 포르투갈을 확고히 손에 넣길 원하게 되죠. 에스파냐 역시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국이 통합되면서 생긴 왕국이었기에 같은 절차를 통해서 포르투갈 역시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입니다만 카스티야나 아라곤과 달리 포르투갈 귀족들은 에스파냐 국왕들을 외국인으로 인식했었으며 이런 상황은 자치권이 점차 축소되고 에스파냐에 합병될것이라는 위기가 고조되면서 독립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중심에는 포르투갈 왕가의 방계 가문 출신이자 왕위계승권 역시 가지고 있었던 8대 브라간사 공작 주앙이 있었습니다. 브라간사 공작 가문은 포르투갈의 핵심 귀족가문중 하나로 포르투갈 왕실의 방계가문이자 오래도록 통혼관계에 있던 가문이었기에 포르투갈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던 가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브라간사 공작이 독립 운동의 중심이 될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브라간사 공작 주앙

주앙 4세



1640년 총독을 감금하고 브라간사 공작은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선포됩니다만, 이것은 곧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이의 전쟁이 시작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세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1640년에서 1646년사이의 단계로 포르투갈의 독립을 확고히 선언하는 상황으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초기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었습니다. 두번째 단계는 1646년에서 1660년 사이로 이때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소규모 전투를 주로했으며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1660년에서 1668년 사이로 결국 포르투갈이 독립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낸 단계인것입니다.


사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이의 전투가 치열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나라다 모두 유럽의 전쟁상황에 휘말려들었고 두 나라 사이의 일보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더 치중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몬티오 전투

1644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전투



이런 상황은 포르투갈이 외교 관계를 중요시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에스파냐와 프랑스 간의 혼인동맹이 이루어지자 이에 대해서 포르투갈은 프랑스와 경쟁관계인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게 됩니다. 주앙 4세의 딸인 카타리나가 이렇게 잉글랜드로 시집갔고 이때 탕헤르와 봄베이(현재 뭄바이)를 혼수로 가져갔었죠. 


주앙 4세는 리스본 협정이 체결되기 전인 1656년 사망합니다만 그의 아들인 아폰수 6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었고 1668년 리스본 조약을 통해서 독립된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브라간사 가문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