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뭐 합스부르크 가문의 포르투갈 통치기의 인판타들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다 했었드랩니다. 그러니 할필요가 없는것이죠. 결국 번외편으로 브라간사 공작 가문이 어떻게 왕위를 얻나를 이야기해야할듯하네요.
...정치적인 이야기는 읽어야하는 것이 많아서 말입니다..ㅠ.ㅠ
포르투갈의 인판타들...번외편(6) 1580년 포르투갈 왕위계승문제 (두번째)
1580년 1월 포르투갈의 국왕 엔리크가 죽으면서 포르투갈 왕위가 누구에게 돌아가야할지 의견이 분분해집니다. 일단 포르투갈 의회는 섭정단을 꾸려서 국왕 지위가 공석인 나라를 이끌어나갔고 이후 국왕을 선출하려합니다.
펠리페 2세, 강력한 에스파냐의 왕위계승후보
사실 당시 제일 왕위에 가까웠던 인물은 바로 에스파냐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2세였습니다. 그는 왕위게승권리를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우는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면서 왕위계승을 굳히려합니다. 왜냐면 아비스 가문이 포르투갈의 왕위를 얻을때인 1385년 상화과 당시의 매우 유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385년에 아비스 기사단장이었던 주앙(주앙 3세)은 국왕 페드루 1세의 사생아 아들이었으며, 혈연관계를 통해서 포르투갈 왕위를 주장하던 카스티야의 국왕을 전투에서 물리치고 승리를 거둬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된것이었습니다.
안토니우 역시 마누엘 1세의 사생아 아들로 성요한 기사단 단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카스티야를 포함하는 나라)의 국왕 펠리페 2세가 혈연관계를 들어 포르투가르이 왕위계승을 주장하는 것마저 유사했었죠.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안토니우는 스스로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선언했지만 선조였던 아비스 기사단장과는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토니우가 국왕으로 선언한 직후 펠리페 2세는 당연히 무력으로 안토니우를 제압하고 왕위를 얻으려합니다. 그리고 알칸타라 전투에서 펠리페 2세의 신하였던 알바 공작이 안토니우에게 승리를 거두고 수도 리스본을 점령하게 되죠. 안토니우는 포르투갈에서 멀리 떨어진 아조레스 섬으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오래도록 국왕으로써의 권리를 주장했었습니다만 결국 아조레스 역시 함락당하고 안토니우는 전통적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적이었던 프랑스로 망명했고 에스파냐와 경쟁중이었던 잉글랜드의 후원을 받기도 했었다고 합니다만 그는 다시는 포르투갈로 돌아갈수는 없었습니다.
안토니우가 아조레스로 떠난뒤 포르투갈 의회는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를 포르투갈의 국왕 필리페 1세로 승인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토니우의 세력이 남아있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에스파냐군은 안토니우의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결국 1583년 아조레스까지 함락시키면서 포르투갈을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1580-1583 포르투갈 계승전쟁
이후 포르투갈은 에스파냐 국왕을 국왕으로 받아들여서 통치받게 됩니다. 하지만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이 서로 합쳐지면서 에스파냐가 성립되었던것과는 달리 포르투갈은 이 에스파냐에 통합되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에스파냐 국왕의 지배를 받았지만 포르투갈은 에스파냐 국왕을 외국인으로 여겼으며 결국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브라간사 공작 주앙
후에 에스파냐에서 독립한뒤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4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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