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이제 정신을 좀 차릴려고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0-;;
작년부터 왠지 농부의 마음이더니(물론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농사철이 되니까 좀 성실모드가 되는것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55) 헤센의 빌헬미네 루이제 : 파벨 1세의 아내(두번째)
헤센의 빌헬미네 루이제
러시아의 나틸리야 알렉세예브나
러시아의 황태자비
Tsesarevna Natalia Alexeievna of Russia
Princess Wilhelmina Louisa of Hesse-Darmstadt
1773년 예카테리나 2세는 아들인 파벨의 짝이 될만한 여성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괜찮은 후보감을 추천해달라고 했으며,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과 교류가 있었던 헤센-다름슈타트의 란트그라핀의 딸들을 떠올렸습니다. 이 딸들중 하나는 이미 프리드리히의 조카이자 후계자와 결혼했었죠. 만약 조카며느리이자 후계자의 부인이었던 헤센-다름슈타트의 프레데리케의 동생들중 한명이 러시아로 시집간다면 틀림없이 훗날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이익을 얻을수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들을 추천했습니다.
파벨 페트로비치 대공
파벨 1세
예카테리나 2세는 헤센-다름슈타트의 란트그라프의 미혼인 세딸들이었던 빌헬미네, 아말리,루이즈와 그녀들의 어머니를 러시아로 초대하게 됩니다. 세딸들중 한명을 며느리감으로 삼겠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되자 어머니인 카롤리네는 딸들에게 서둘러 높은 지위에 걸맞는 교육을 완성시키려 합니다. 여제의 며느리는 장래에 러시아의 황후였기에 매우 높은 지위였었죠. 빌헬미네와 그 자매들은 당대 교양어였던 프랑스어를 완벽히 구사하게 배웠고, 춤과 예법들을 아주 열심히 익혔다. 자매들과 그 어머니는 베를린으로 갔고 그 뒤로는 러시아에서 보낸 배를 타고 러시아로 갔다. 이때 자매들이 탔던 배의 함장은 파벨의 친구였던 안드레이 라즈모프스키였는데 그는 이 자매들이 매우 매력적이며 특히 빌헬미네에 더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빌헬미네는 그의 관심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죠.
자매들이 러시아에 도착한 이틀후 파벨은 자매들중 제일 예쁘고 쾌활하고 활기찼던 빌헬미네를 자신의 신붓감으로 선택합니다. 파벨은 빌헬미네와 함께 할때 매우 기뻐했었다고 합니다. 파벨과 빌헬미네의 약혼기념 파티가 열린날, 빌헬미네는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으며 정교회식 이름으로 "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1773년 9월 29일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가 된 빌헬미네는 러시아의 황태자였던 파벨 페트로비치 대공과 결혼해서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됩니다.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결혼 후 몇달간 신혼부부는 행복한 생활을 보냅니다만 곧 결혼생활은 불행해지게 됩니다. 파벨의 어머니인 여제는 처음에는 며느리를 예뻐했지만 며느리가 자신이 바란 사람이 아닌것을 알게 되면서 무척이나 실망하게 됩니다. 여제는 며느리에 대해서 충고를 듣지도 않는 인물이라고 언급하죠. 나탈리야는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고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려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여제에게 큰 실망거리였을 것입니다. (물론 여제 스스로가 쿠데타로 여제가 됐지만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어머니에게 꼼짝하지 못하는 남편 파벨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이후 궁정에서는 나탈리야가 파벨의 제일 친한 친구인 안드레이 라즈모프스키와 연애관계가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라즈모프스키가 추방당하게 만들었죠. 친구가 추방당하는 것에 대해서 파벨은 어떻게든 친구를 보호하려 했다고 합니다.
안드레이 라즈모프스키
나탈리야는 1776년 4월 매우 오랜 진통끝에 첫아이를 사산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직후에 나탈리야 역시 사망하죠. 아내가 죽은뒤 파벨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파벨은 의사들이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이미 궁정에서 그의 친한 친구가 추방당했고 그후에는 아내가 죽었는데 아내를 살릴기회가 있었음에도 의사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은 음모라고 여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아내를 아무리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파벨은 러시아의 후계자였으며 다시 결혼해야할 의무가 있었고,여제는 다시 한번 며느리감을 찾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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