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52)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다섯번째)

엘아라 2018. 2.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대충 이번달은 그냥 다 예카테리나 2세 이야기로 채워봅겠습니다.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52)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다섯번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예카테리나 대제

안할트-제르브스트의 조피

Catherine II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 (Yekaterina Alekseyevna) 

(2 May [O.S. 21 April] 1729 – 17 November [O.S. 6 November] 1796),

 Catherine the Great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Yekaterina Velikaya),

 Princess Sophie of Anhalt-Zerbst,



예카테리나의 치세동안 예카테리나는 많은 애인들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애인들에게 특별한 지위등을 부여했고 재산등도 많이 부여합니다.


예카테리나의 많은 애인들중 특별했던 사람들이 몇명있었습니다. 그중 여제에게 거의 남편과 다름없었던 두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그리고리 오를로프와 그리고리 포템킨이었습니다.


그리고리 오를로프는 예카테리나가 황태자비시절에 관계를 맺었던 인물로 그와 그의 세동생들은 예카테리나를 여제로 만든 인물들중 한명이었습니다. 특히 그리고리의 막내동생이었던 알렉세이 오를로프는 여제의 지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표트르 3세를 죽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리 오를로프는 여제 치세 초기에 영향력을 행사했었죠. 예카테리나는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들을 낳았으며 이런 상황은 그가 여제의 남편이나 다름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 여제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를 위해 많은 권력이나 재산등을 부여했었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만들었으며 결국 여제에게 다른 애인을 소개시켜주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는데 그리고리 오를로프는 여제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햇었습니다만 결국 이것은 소용없었으며 결국 궁정과 여제의 곁을 떠났었습니다.



그리고리 오를로프


그리고리 포템킨은 1762년 예카테리나의 쿠데타 당시에 예카테리나의 눈에 들어서 장교가 된 인물이었습니다. 포템킨은 여제와 연인이 되기전 이미 자신만만한 인물로 여제에게 자신이 언젠가 여제의 연인이 될거라고 이야기했었다고 합니다. 포템킨은 여제의 측근이 되었으며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일어났을때 여제에게 전쟁에 보내달라고 이야기했었으며 그의 능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영웅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게 되죠. 돌아온 직후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포템킨은 예카테리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녀의 연인이 됩니다. 예카테리나는 전쟁영웅이기도 한 자신의 연인에게 엄청난 지위들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포템킨은 권력을 잡았으며 여제의 정치적 파트너가 되죠. 이런 상황은 아마도 여제와 포템킨이 비밀리에 결혼했으리라는 추측을 낳게 했습니다. 포템킨은 군인으로서 계속 전쟁에 참전했었습니다만 그와 예카테리나의 사이는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나쁘게 헤어진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포템킨은 1791년 병으로 사망했었습니다.



그리고리 포템킨


이 외에도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며 후에는 예카테리나의 지지로 폴란드의 국왕이 된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나 당대에 파벨 1세의 아버지라는 소문이 있었던 세르게이 살티코프나 그리고리 오를로프를 몰아내고 예카테리나의 연인이 되어서 권력에 다가갔었던 알렉산더 바실치코프 등 역시 예카테리나의 애인이었으며 더 많은 애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카테리나는 젊은 장교들과 지속적으로 연애관계를 유지했었지만 포템킨이 죽은뒤에는 남편처럼 권력을 나누었던 남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