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시간나면 가계도를 진짜 그리고 싶은데...
가계도 그리는 작업은 진짜 표는 안나는데 시간과 공이 너무 많이 드는 작업이라서 말입니다.ㅠ.ㅠ
가계도만 전문으로 그려주는 인공지능이 나왔으면 해요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9)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두번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예카테리나 대제
안할트-제르브스트의 조피
Catherine II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 (Yekaterina Alekseyevna)
(2 May [O.S. 21 April] 1729 – 17 November [O.S. 6 November] 1796),
Catherine the Great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 Yekaterina Velikaya),
Princess Sophie of Anhalt-Zerbst,
안할트-제르브스트의 조피는 1729년 프로이센의 영토였던 포메른 지방의 슈테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슈테틴 지방의 총독이였이었기에 이곳에서 태어난 것이었죠. 비록 조피는 안할트-제르브스트 통치 군주 가문 출신이었지만 이 가문은 매우 작은 가문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단독으로 영지를 상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문에 조피의 가족은 다른 왕족들에 비해서 그리 부유한 편도 아니었죠. 어린시절 조피는 다른 많은 왕녀들처럼 여러 교양교육을 받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어는 당대 교양어였기에 꼭 익혀야하는 필수적 요소였는데 훗날 예카테리나는 자신은 프랑스어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회상할 정도였습니다
슈테틴
17세기
조피가 그대로 독일에서 성장했다면 작은 군주령의 가난한 왕녀로 아마 비슷한 신분의 남자나 아니면 신분은 좀 더 높더라도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피는 러시아로 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과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는 그리 잘 맞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당시 두 나라의 외교관들은 두 나라가 연합해서 오스트리아를 견제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를 위해 안할트-제르브스트 가문 출신으로 프로이센 장군의 딸이었던 조피와 옐리자베타의 후계자인 표트르를 결혼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옐리자베타 여제 입장에서도 나름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조피는 표트르의 육촌이었을뿐만 옐리자베타 여제도 잘 아는 가문의 출신이었습니다. 엘리자베타 여제의 죽은 약혼자가 바로 조피의 외삼촌이었기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조피와 표트르의 혼담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혼담은 조피의 뜻은 아니었는데 조피는 어린시절 친척이었던 표트르를 만난적이 있었습니다. 10살인 조피는 당시 막 아버지의 지위를 이어받아 공작이 된 11살의 표트르를 만났었는데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었습니다.
표트르 3세
1740년대, 러시아에 온 뒤인듯합니다.
러시아의 성 안드레이 훈장을 한걸 보면 그렇습니다.
조피의 어머니인 요한나 엘리자베트는 황후의 어머니가 되기에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는 인물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는 궁정음모를 사랑했고 가십등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딸이 러시아의 황후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에 매우 질투했고 심지어 딸을 다른곳에 시집보내려했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피의 외삼촌이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되었고 이런 관계는 조피가 러시아 황제의 아내가 되기에 더욱더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조피와 표트르의 결혼은 결정되었고, 조피는 1744년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이때 조피의 어머니인 요한나 엘리자베트 역시 딸을 따라갑니다. 아마도 그녀는 딸이 황태자비로 화려하게 살 러시아에서 황태자비의 어머니로써 대접받길 원했었던듯합니다. 게다가 옐리자베타 여제의 호의를 얻을수도 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요한나 엘리자베트는 곧 러시아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죄목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스파이노릇을 했다는 이유여서였는데 아마도 요한나 엘리자베트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부담을 느꼈던 옐리자베타 여제의 결단이었을 듯합니다.
조피의 어머니 요한나 엘리자베트
러시아로 왔던 조피는 처음에는 너무나 낯선 환경에 당황하게 됩니다. 러시아는 너무나 추웠으며 이런 기후에 연약한 왕녀가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죠. 또 말도 달랐기에 러시아어를 배워야만했었습니다. (물론 궁정에서 쓰던 말은 프랑어였기에 지장은 없었을 것입니다만 러시아 모든 사람이 프랑스어를 아는 것은 아니었죠.) 러시아에 도착한 직후 매우 아팠던 조피는 후에 "거의 죽을뻔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었습니다.
조피는 러시아로 오면서 러시아에서의 삶을 기회로 받아들였던듯합니다. 그녀는 러시아의황후가 되기 위해 여러가지 마음의 준비를 했던듯한데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개종 문제였습니다. 조피는 루터파를 믿는 가문 출신이었기에 부모 모두 루터파였습니다. 하지만 조피는 러시아에서 살려면 정교회로 개종해야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던듯합니다. 조피가 초기에 아파서 죽을뻔했을때 조피의 어머니는 루터파 성직자를 불러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피가 이를 거절하고 정교회 신부님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했으며 이 이야기를 들은 옐리자베타 여제는 조피의 행동에 매우 흡족해했었죠.
조피의 아버지는 딸이 개종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조피는 결국 1744년 6월 정교회로 개종했으며 개종하면서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개종한 직후 표트르와 예카테리나의 공식적인 약혼이 발표됩니다.
러시아에 온 직후의 예카테리나
그리고 1745년 8월 16살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는 17살의 표트르 표도로비치 대공과 결혼해서 러시아의 황태자비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대공비가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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