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요즘 글쓰기가 미친듯이 싫습니다.
의욕상실이라..ㅠ.ㅠ
이러다 새해 특집 못할것같은 느낌도....ㅠ.ㅠ
어쨌든 읽기 싫어서 아는 글 하나 잠깐 써봅니다.
1880년 겨울 궁전의 폭탄 테러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의 마지막 개혁 군주였다. 러시아는 근대적 국가를 향해 가고 있었음에도 전 근대적인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농노제도였다. 이런 전근대적 국가 시스템은 근대적 국가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이런 상황에 맞춰 나라를 개혁하려 했지만 러시아 같이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나라에서 이런 개혁은 쉽지가 않았다.
결국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을 직면한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의 개혁정책을 잠시 멈추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옛 시스템에 불만 가득했던 사람들의 불만에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황제의 이전 개혁정책은 이미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던 많은 러시아 지식인 계층에 호응을 얻었었다. 하지만 이런 개혁 정책을 중단하는 것은 이들의 반발을 사는 것이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그 시기 다른 유럽 국가들이 "입헌군주제"로 나아가던것과 달리 여전히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지식인들의 불만을 사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
1866년 황제에 대한 매우 심각한 수준의 테러가 일어났다. 알렉산드르 2세는 여기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많은 교회등을 세웠었다. 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황제에 대한 다른 연이은 암살 시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몇번의 시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1880년 겨울 궁전의 폭탄 테러 사건이었다.
1880년 2월 17일 러시아 황실 가족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차역에 있었다. 이들은 황후의 오빠인 헤센의 알렉산더와 그의 아들인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후는 죽어가고 있었기에 황후의 가장 가까운 오빠인 알렉산더가 황후를 만나러 온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러시아에 폭설이 내렸고, 헤센의 알렉산더가 탄 기차가 연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기차는 도착시간보다 30분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비록 시간은 좀 늦었지만 이들은 예정대로 겨울 궁전에서 황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헤센 대공가문 사람들
1864년
가운데가 알렉산드르 2세의 황후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이고 맨 오른쪽 남자가 오빠인 헤센의 알렉산더입니다. 맨 왼쪽 남자는 역시 황후의 오빠인 카를이고, 알렉산더 옆의 남자는 스웨덴의 구스타프(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아들,황후랑 이종사촌간이던가 그렇습니다.)입니다. 가운데 둘은 카를의 아들인 헤센의 루드비히 4세와 그의 동생이고 맨 오른쪽 여자는 바텐베르크 공비입니다. 앉아있는 여자중 왼쪽은 카를의 부인인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이고 오른쪽은 루드비히 4세의 아내인 영국의 앨리스 입니다.
이들이 탄 마차가 겨울 궁전에 들어섰을때, 궁전에서 매우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황실 가족들이 식사하기로 되어있었던 식당에서 일어났고, 기차가 연착되지 않았다면 모두들 그 시간에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하지만 황실 가족들은 모두 무사했고 대신 황실 근위대 11명이 죽고 45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었다.
1880년 겨울 궁전의 폭탄테러
이 일은 "인민의 의지"라고 해석될수 있는 나로드나야 볼야Narodnaya Volya (Наро́дная во́ля) 소속이었던 스테판 칼투린이 주동자로 벌린 일이었다. 그는 사건이 일난뒤 모스크바로 피신했으며 후에는 오뎃사로 도망갔었다. 하지만 결국 나로드나야 볼야는 자신들의 목적이었던 황제 암살에 성공했다. 그러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3세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고 이들 모두를 체포해서 처형시켰는데 스테판 칼투린 역시 결국 비밀경찰에 체포되어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스테판 칼투린
이 사건에서 황실가족들은 모두 무사했었는데, 이때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의 정부였던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와 그녀의 아이들을 겨울 궁전에 데리고 와서 이들은 겨울 궁전에 남아있었었다. 이때문에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황제는 서둘러 궁전으로 뛰어가서 사랑하는 정부와 그 아이들의 안위를 챙겼다고 한다. 죽어가는 황후 역시 겨울 궁전에 남아있었지만 황후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안쓰고 말이다. 이 모습을 본 황후의 오빠는 씁쓸함을 느꼈다고 한다.
예카테리나 돌고루카야와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 2세
1870년대
더하기
1880년 6월 황후가 죽고 애도 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알렉산드르 2세는 서둘러 자신의 정부였던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와 재혼했다. 이것은 러시아 궁정에서 매우 큰 스캔들로 여성들이 모두 황제의 새 아내에게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황제 역시 황후가 죽은지 1년도 되지 않아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딸인 마리야와 아들인 세르게이와 함께 있는 알렉산드르 2세와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
1860년대
자료출처
The last Great tear : Alexander II of Russia (라진스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역사이야기 > 러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9)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두번째) (0) | 2018.01.31 |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8)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첫번째) (0) | 2018.01.24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7)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 표트르 대제의 손녀 (0) | 2017.12.20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6)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 황태자 알렉세이의 아내 (0) | 2017.12.13 |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5) 나탈리야 페트로브나 : 표트르 대제의 딸 (0) | 2017.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