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 요즘 뭐랄까 마음이 심숭생숭하고 늘 우울한것이 영 안 좋네요.
원래 연말에 이렇긴한데...뭐랄까 좋아하던 사람들이 죽어서 왠지 우울한듯해요.
게다가 자루스키 새앨범은 제 취향도 아니고 말입니다.(헨델 말고 비발디를 부르란 말이다!!)
하여튼 이래저래 꿀꿀해서 그런지 수요일날 뭐썼는지 까먹었습니다..흑..
컴퓨터 들고 나가서 어디 가서 글을 좀 쓰던가 해야겠습니다. 글이 자꾸 밀려요..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46)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 황태자 알렉세이의 아내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Charlotte Christine Sophie of Brunswick-Lüneburg
Sophie Charlotte
Charlotte
(28 August 1694 – 2 November 1715),
보통 조피 샤를로테 또는 샤를로테라고 알려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크리스티네 조피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루드비히 루돌프와 그의 부인인 외팅겐-외팅겐의 루이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브라운슈바이크 가문은 분가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었는데 이를테면 영국의 국왕이 되는 조지 1세 역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 출신이기도 합니다.
샤를로테의 아버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루드비히 루돌프
샤를로테의 할아버지인 안톤 울리히는 볼펜뷔텔을 상속받아서 볼펜뷔텔의 통치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형이 죽은뒤에 역시 볼펜뷔텔의 통치군주가 되었습니다. 샤를로테의 할아버지인 안톤 울리히는 손녀이자 샤를로테의 언니였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를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계자가 될수도 있는 카를 대공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리고 카를대공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6세가 되면서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는 황후가 되었고,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속녀가 되었었죠.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샤를로테의 언니,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어머니
언니가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가면서 샤를로테 역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녀를 눈여겨 본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였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래도록 투르크와의 전쟁을 하고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등은 이런 합스부르크 가문을 숙적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흑해 연안으로 세력을 넓혀가던 러시아 역시 오스만 제국과 부딪히게 됩니다. 결국 러시아는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동맹을 생각하게 되었고, 언니가 황후였던 샤를로테는 정치적으로 좋은 결혼 상대였던 것입니다.
샤를로테
언니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가 황후가 된지 이주정도 지난 뒤인 1711년 10월 25일 샤를로테는 표트르 대제의 장남인 알렉세이 표트로비치 대공과 결혼합니다. 샤를로테는 결혼 후에도 개종하지 않고 루터파의 신앙을 유지했었고 이 때문에 그녀는 정교회식 이름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샤를로테는 뇌제 이반 4세의 할머니이자 비잔틴 제국의 공주였던 소피아 팔레올로기나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왕녀로 러시아 황실로 시집온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러시아의 짜르들은 모두 러시아 귀족들과 통혼했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개혁정책을 추구하면서 외국과의 동맹을 원했던 표트르 대제의 뜻이었을 것입니다.
표트르 대제의 아들
알렉세이 표트로비치 대공
서유럽의 왕가와 통혼하는 것을 원했던 표트르 대제에게 샤를로테는 매우 예쁜 며느리였습니다. 하지만 샤를로테는 러시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어려웠는데 아마도 당시에 외국인에게 개방적이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외국인 왕녀 출신으로 전통적 러시아 교육을 받았던 여성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샤를로테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느정도 거리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문에 샤를로테는 자신의 궁정에서 주로 외국인 들과 함께 지냈었다고 합니다.
샤를로테와 알렉세이의 결혼 생활은 처음에는 행복했지만 곧 불행해지게 됩니다. 샤를로테는 러시아어를 몰랐고 개종도하지 않았기에 알렉세이는 아내를 편안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다른 여성의 품으로 떠나버립니다. 자신의 가정교사가 보내준 농노였던 아프로시나와 함께 하면서 아내를 외면하게 되죠. 샤를로테는 아마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지는데 의기소침해졌던듯합니다. 그녀는 두번째 아이를 낳은뒤 산욕열로 사망하는데, 죽기 전 시아버지인 표트르 대제에게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죽기를 바라면서 약을 거부했다고 전해집니다.
알렉세이와 샤를로테
샤를로테는 알렉세이와의 사이에서 딸인 나탈리아와 아들인 표트르를 낳았고 표트르를 낳은 얼마뒤 산욕열로 사망했습니다. 샤를로테가 죽은뒤 알렉세이는 자신의 정부였던 아프로시나와 함께 지냈었다고 합니다.
샤를로테의 두 아이들
표트르 2세와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샤를로테가 죽은 지 50년후에, 샤를로테가 1715년 죽지 않았으며 비참한 결혼생활로부터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게 됩니다. 샤를로테는 관에 나무인형을 넣은뒤 달아났으며, 프랑스 장교와 결혼했으며, 프랑스나 벨기에 등에서 지내면서 조카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에게서 연금도 받았다는 이야기들이었죠. 그리고 이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이나 대본,오페라등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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