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53)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여섯번째)

엘아라 2018. 2.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예카테리나 여제 마지막입니다. 너무 오래했어요 -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53) 예카테리나 2세 : 표트르 3세의 황후(여섯번째)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예카테리나 대제

안할트-제르브스트의 조피

Catherine II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 (Yekaterina Alekseyevna) 

(2 May [O.S. 21 April] 1729 – 17 November [O.S. 6 November] 1796),

 Catherine the Great (Екатери́на Вели́каяYekaterina Velikaya),

 Princess Sophie of Anhalt-Zerbst,


예카테리나는 점차 나이가 들어갔으며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러시아의 여제였으며 그녀는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제는 죽기전 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카테리나 2세

1794년


1796년 9월 러시아의 궁정에는 한 젊은이가 도착합니다. 그는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4세 아돌프였습니다. 그는 예카테리나의 손녀였던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에게 청혼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왕가의 혼담은 정치적인 문제가 강했으며 국왕이 청혼하러 왔다는 것은 이미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외교적 합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여제는 구스타프 4세 아돌프와 손녀가 매우 잘 어울리는 사이라고 여겼으며 결혼이 성사될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스웨덴의 젊은 국왕은 여대공이 개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용납할수 없다는 이유로 청혼하지 않고 돌아가버립니다. 이 사건은 여제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이었는데 이런식으로 혼담이 깨지는 것은 손녀의 명예에 치명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제나 러시아 황실에게도 치명적이기도 했습니다. 여제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으며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줍니다. 



예카테리나의 손녀

알렉산드라 파블로브나 여대공


물론 구스타프 4세 아돌프가 도망간 뒤 여제는 충격을 받았지만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었습니다. 그러나 여제의 나이에 이런 충격은 여제의 건강을 매우 악화시키는 것이었으며 여제의 상태가 나아진 것은 잠시간의 평온함이었을 뿐이었죠. 1796년 11월 여제는 아침 여제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결국 다음날 사망합니다.


여제는 죽기전 황위를 아들인 파벨보다 손자인 알렉산드르에게 물려주길바랬다고 합니다만, 여제의 뜻은 이뤄지지 못하고 황위는 아들인 파벨에게 돌아갑니다. 여제가 죽기전 아들에게 남긴 편지는 파벨 1세를 충격에 빠뜨렸는데 여제는 아들에게 사실 표트르 3세는 파벨의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으며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이들이 파벨이 표트르 3세와 많이 닮았으며 여제가 친아버지라고 주장했던 인물과 전혀 안닮았으며 여제가 아들을 많이 미워했던것 으로 봐서 파벨1세는 표트르 3세의 친아버지가 맞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제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측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파벨 1세



여제는 네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중 두명은 황태자비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로 표트르 3세의 아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며, 나머지 두 아이는 예카테리나의 애인들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그리고리 오를로프와 그리고리 포템킨의 자녀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첫째 아이는 파벨 1세로 어머니의 뒤를 이어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인 표트르 3세를 매우 존경했고 그리워했었기에 어머니가 죽은뒤 황제로 대접받지 못했던 아버지 표트르 3세를 복권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예카테리나 2세 측에 섰던 귀족들에게 위협이 되는 문제로, 이들을 억누르기위해 대대적 숙청을 단행했었습니다만 이런 숙청작업은 도리어 파벨 1세를 위험에 빠뜨렸고 근위대가 결국 황제를 살해하고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르를 황제로 세우게 됩니다.



파벨 1세와 그 가족들



예카테리나의 둘째아이는 안나로 아마도 스타니스와프 포니아토프스키의 딸로 추정됩니다. 표트르 3세는 딸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여겼었지만, 옐리자베타 여제는 자신의 언니이자 표트르의 어머니인 "안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됩니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안나 역시 파벨과 함께 데려가 키웠지만 안나는 어린시절 사망했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셋째아이는 알렉세이 보브린스키로 그리고리 오를로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예카테리나가 황후시절에 태어났는데, 아내와 사이가 나빴던 표트르 3세는 예카테리나가 아이를 낳을 때를 노려 그녀를 부정으로 몰아 이혼하려했다고 합니다만 예카테리나는 아들을 빼돌렸고 표트르 3세는 아내의 부정을 잡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예카테리나는 금방 출산한 몸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편을 맞이했었다고 합니다. 알렉세이는 보브리키라는 마을에서 성장했는데 여제는 후에 아들의 성을 이 마을에서 따서 지어줬습니다. 파벨 1세는 즉위후 이부동생에게 백작 지위를 부여했었으며 장군지위를 부여해서 궁정에서 지위를 줬다고 합니다.



알렉세이 보브린스키

예카테리나의 아들


예카테리나의 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옐리자베타 그리고리예브나 템키나는 사실 정확한 가계가 알려져있지 않았지만 예카테리나와 그리고리 포템킨의 딸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그녀의 성이 포템킨과 비슷하며 포템킨의 친척이 그녀의 후견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매우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점이 그녀가 여제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돌게 했었던듯합니다.



옐리자베타 템키나

...어쩌면 예카테리나 2세의 딸일수도 있는 인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