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번달은 딱 알렉산더 3세 이야기까지군요.
다음에는 번외편으로 스코틀랜드 왕위계승문제와 연결되어서 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를 하고 그다음 왕가로 넘어가면 될듯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14) 욜랑드 드 드뢰 ; 알렉산더 3세의 왕비
욜랑드 드 드뢰
스코틀랜드의 왕비
브르타뉴 공작부인
Yolande of Dreux
(1263 – 2 August 1322)
욜랑드 드 드뢰는 드뢰 백작이었던 로베르 4세와 그의 아내인 베아트리스 드 몽포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드뢰 백작가문은 프랑스의 국왕 루이 6세의 다섯째아들이었던 로베르가 첫번째 드뢰 백작이 되면서 시작된 가문으로 13세기에는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중 하나이자 매우 강력한 귀족가문중 하나였었습니다.
로베르 4세 드 드뢰의 씰
욜랑드의 어머니인 베아트리스 드 몽포르는 유명한 몽포르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증조할아버지가 바로 4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었으며 후에 알비 십자군 전쟁의 사령관으로 유명했던 5대 레스터 백작 시몽 드 몽포르였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할아버지인 아모리 6세 드 몽포르는 가문의 프랑스쪽 영지를 물려받았으며 아모리 6세 드 몽포르의 동생이자 잉글랜드쪽 영지인 레스터 백작 지위를 물려받았던 6대 레스터 백작인 시몽 드 몽포르는 잉글랜드의 헨리 3세의 여동생과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결혼했었으며 후에는 처남이었던 헨리 3세에 대해서 반란을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아모리 6세의 유일한 남성후계자였던 장 1세의 외동딸이었으며 이때문에 프랑스쪽 몽포르 가문 영지의 상속녀이기도 했습니다.
베아트리스 드 몽포르의 씰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3세는 1275년 아내인 잉글랜드의 마거릿을 잃었지만 그에게는 세명의 자녀가 있었기에 결혼이 그리 급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1280년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1281년 9살이었던 막내아들 데이비드가 죽었고 1283년에는 딸이자 노르웨이의 왕비였던 마거릿이 외동딸인 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를 낳고 사망합니다. 그리고 1284년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알렉산더가 사망합니다. 이렇게 되자 알렉산더 3세의 직계후손은 노르웨이의 공주였던 외손녀 마르가레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고 알렉산더 3세에게는 후계자 문제가 시급해지게 됩니다.
알렉산더 3세의 씰
이때 알렉산더 3세의 어머니였던 마리 드 쿠시는 아들에게 적당한 아내감을 찾아주게 됩니다. 바로 욜랑드 드 드뢰였습니다. 욜랑드의 어머니였던 베아트리스 드 몽포르는 마리 드 쿠시의 두번째 남편인 장 드 브리엔의 의붓딸로 마리 드 쿠시에게는 의붓손녀가 되었습니다.( ..--;; 이거 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머리가 깨졌는데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인 쟌 드 샤토됭이 첫번째로는 장 드 몽포르랑 결혼해서 베아트리스를 낳았고, 첫번째 남편이 죽은뒤 장 드 브리엔과 재혼해서, 베아트리스가 장 드 브리엔의 의붓딸이 됩니다. 그리고 장 드 브리엔은 첫번재 아내인 잔 드 샤토됭이 사망한 뒤, 알렉산더 3세의 어머니인 마리 드 쿠시와 재혼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쿠시 가문과 드뢰 가문은 오래도록 통혼 관계를 유지해왔기에 마리 드 쿠시는 당연히 드뢰 가문 출신이었던 욜랑드와 친척관계여서 더 잘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 드 쿠시는 아마도 잉글랜드 세력을 견제하려던 전통적인 방법으로 프랑스의 강력한 가문 출신인 욜랑드를 며느리감으로 생각했었던듯합니다. 1285년 초 결혼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1285년 22살의 욜랑드 드 뢰는 44살의 알렉산더 3세와 스코틀랜드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 결혼식에는 많은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참석했었습니다.
드뢰 가문의 문장
욜랑드는 결혼한 뒤 바로 임신한 듯합니다만 그녀의 남편인 알렉산더 3세는 결혼 6개월도 되지 않아서 낙마사고로 사망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욜랑드는 복잡한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문제의 한가운데 있게 되는데, 알렉산더 3세의 유일한 후손이었던 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가 강력한 왕위계승후보였었지만 욜랑드가 임신중이었기에 이 문제도 복잡하게 됩니다. 결국 욜랑드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이가 왕위를 이을것이고 만약 딸을 낳는다면 마르가레테가 왕위계승자가 되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욜랑드의 아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한 기록에 따르면 욜랑드는 아이를 사산했던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결국 왕위는 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에게 돌아갈 예정이 되었죠. 욜랑드는 한동안 스코틀랜드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1288년의 기록에 욜랑드가 아직 스코틀랜드에 머물고 있다고 나와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욜랑드는 고향인 프랑스로 되돌아갑니다. 아마도 자녀도 없었으며 후계자 문제와 거리가 있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던 욜랑드가 스코틀랜드에 머물기에는 힘들었던듯합니다.
1294년 욜랑드는 브르타뉴 공작이었던 아르투르 2세와 재혼합니다. 아마도 많은 중세시대 여성들처럼 그녀도 남편의 보호아해 있어야했기에 적당한 남편감을 찾았었던듯합니다. 브르타뉴 공작 가문은 드뢰 백작 가문의 방계가문이기도 했었기에(드뢰 백작의 아들이 브르타뉴 공작의 상속녀와 결혼) 아마 같은 가문인 욜랑드와 아르투르가 결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르투르는 역시 두번째 결혼이었으며 이 결혼으로 여섯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욜랑드는 죽던 해인 1322년 어머니의 상속영지인 몽포르가문의 상속영지를 물려받았으며 그녀의 장남이었던 장은 몽포르 가문의 상속영지를 이어받았기에 "장 드 몽포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형이 남성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조카이자 공작령의 상속녀인 잔느에 대항해서 브르타뉴공작령의 상속을 주장했었고 결국 브르타뉴 공작령을 상속받게 됩니다.
낭트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 장 드 몽포르와 그의 아내인 플랑드르의 요한나(잔느)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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