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알렉산더 3세가 죽고 나서 스코틀랜드 왕위계승이 또 복잡해지거든요.
그래서 번외편으로 그 이야기를 좀 다룰듯합니다. 일단 제가 뭐 이해를 해야 글을 쓰니까요...ㅠ.ㅠ
스코틀랜드의 왕비들...(13) 잉글랜드의 마거릿 : 알렉산더 3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마거릿
스코틀랜드의 왕비
Margaret of England
(29 September 1240 – 26 February 1275)
잉글랜드의 마거릿은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3세와 그의 아내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의 첫째딸로 태어났습니다. 헨리 3세는 존 왕과 이자벨 당굴렘의 아들이자 알렉산더 2세의 첫번째 아내였던 조앤의 오빠이기도 했었습니다.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는 프로방스 백작 라몽 베렝가르 4세의 딸로 엘레오노르 자매 넷은 모두 왕비 칭호를 얻었으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마거릿의 부모
헨리 3세와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
마거릿의 혼담은 아주 일찍 시작되는데 당대 많은 왕족 여성들처럼 마거릿의 혼담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서로 영향을 주는 나라였으며 영토가 붙어있었기에 자주 서로 영향을 받았었습니다. 이때문에 1244년 잉글랜드의 헨리 3세와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2세는 두 나라간의 평화를 위해 자신들의 두 자녀들인 마거릿과 알렉산더를 결혼시키기로 결정했고 이해에 마거릿과 알렉산더의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됩니다.
1251년 12월 11살의 마거릿은 10살의 스코틀랜드의 국왕 알렉산더 3세와 결혼해서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 마거릿과 알렉산더는 결혼후에 잠시 잉글랜드에 머물렀다가 1252년 스코틀랜드로 돌아갔고 에든버러에 거주하게 됩니다.
알렉산더 3세의 씰
어린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에 와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섭섭한 일들을 잉글랜드에 편지를 써서 가족에게 보냈고,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헨리 3세는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해서 스코틀랜드 측에 언급했기에 결국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사이의 긴장감을 더하는 일이 됩니다. 또 마거릿은 남편을 매우 사랑하고 자주 만나길 바랬지만, 둘은 너무 어렸기에 성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서로 자주 만나지 못했고 이것 역시 마거릿이 스코틀랜드에서 우울해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마거릿은 스코틀랜드의 기후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으며 에든버러의 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어린 마거릿이 향수병을 앓게 만들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잠시 지내길 간절히 바라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거릿이 영국으로 돌아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 역시 있었기 때문입니다.
1255년 마거릿의 어머니인 잉글랜드의 엘레오노르 왕비가 딸의 건강을 걱정해서 스코틀랜드로 의사를 보냅니다. 의사는 마거릿이 창백하고 외로워하며, 죄수처럼 마음대로 여행도하지 못하고 남편을 보는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고 전합니다. 이에 대해서 마거릿의 아버지인 헨리 3세는 딸을 위해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에게 딸을 좀더 왕비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헨리 3세와 섭정단은 이제 열네살이 된 국왕 부부가 결혼을 완성해서 함께 하기로 하고, 또 부부가 잉글랜드를 방문하는 것을 합의합니다. 1255년 마거릿과 알렉산더 3세는 잉글랜드로 가서 마거릿의 부모를 만났고, 마거릿은 잠시 잉글랜드에 더 머물렀습니다만 곧 남편을 따라 다시 스코틀랜드로 갔었습니다.
헨리 3세와 아이들
이후 마거릿은 남편과 함께 잉글랜드로 방문을 했는데 1260년에서 1261년 사이 방문했을땐 둘의 첫아이이자 딸인 마거릿을 잉글랜드에서 낳았었습니다. 또 1269년에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유해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봉안했을때도 남편과 함께 잉글랜드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아버지 헨리 3세가 죽었을때는 잉글랜드로 가지 못했는데 그때는 막내아이를 임신중이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오빠인 에드워드 1세의 즉위식에는 남편과 함께 참석했었습니다.
에드워드 1세와 함께 있는 알렉산더 3세
마거릿은 오빠의 즉위식 다음해인 1275년 사망했습니다.
마거릿과 알렉산더 3세와의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첫째아이는 딸인 마거릿으로 후에 노르웨이의 국왕 에릭 2세와 결혼했습니다. 둘사이에는 딸인 마르가레테만이 태어났는데 후에 스코틀랜드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했을때 마르가레테가 스코틀랜드의 계승자로 선포되기도 했었습니다.
둘째아이는 아들인 알렉산더로 그는 20살때까지 살았으며 플랑드르 백작의 딸과 결혼했었습니다만 후손없이 사망했으며 그가 죽은뒤 스코틀랜드의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합니다.
막내아이는 아들인 데이비드로 그는 9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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