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제 살짝 아는 사람이군요 ㅎㅎㅎ
스코틀랜드의 왕비들...(11) 잉글랜드의 조앤 : 알렉산더 2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조앤
스코틀랜드의 왕비
Joan of England
(22 July 1210 – 4 March 1238),
잉글랜드의 조앤은 잉글랜드 국왕이었던 존과 그의 아내이자 앙굴렘 백작령의 상속녀였던 이자벨 당굴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존과 이자벨 당굴렘의 결혼은 당대에 큰 문제가 되었는데 이자벨은 원래 뤼지냥 가문과 결혼하기로 되어있엇고 약혼자의 집에서 신부수업을 받던중 존의 눈에 들어 결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자벨의 부모는 숙적이나 다름 없었던 뤼지냥 가문으로 딸을 시집보내기 보다는 상위 군주인 존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만 이 결혼의 결과는 정치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불행했었죠. 신부를 뺏긴 뤼지냥 가문은 프랑스에서 존이 아닌 프랑스 국왕측에 섰으며 이것은 존의 프랑스 내 영지를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중세의 헬레네"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게 되는 이자벨(..그만큼 예쁘다는 소리..)은 남편과 사이도 좋지 않았는데 특히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정작 정치적인 면에서는 배제되었기에 나이 많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컸었던듯합니다.
조앤의 아버지
존 왕
이런 상황에서 조앤은 뤼지냥 가문과의 평화를 위해 이사벨의 약혼자의 아들과 약혼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사벨과 존의 결혼으로 틀어진 뤼지냥 가문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앤은 어머니처럼 약혼자 가문으로 보내져서 그곳에서 성장합니다. 하지만 조앤은 뤼지냥 가문 사람과 결혼하지 못합니다. 1216년 존 왕이 죽은뒤, 조앤의 어머니인 이사벨은 잉글랜드 상황이 정리되자 자신의 상속영지였던 앙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중세의 헬레네"라는 별명처럼 이사벨은 1220년 딸의 약혼자이자 자신의 옛약혼자의 아들인 휴10세와 정식으로 결혼해버립니다. 이사벨은 앙굴렘 백작령의 상속녀였기에 이사벨의 남편이 앙굴렘 백작령의 통치 권리도 가질수 있었기에 휴 10세 역시 이사벨의 딸인 조앤보다 이사벨이 더 괜찮은 혼처라고 생각했을수 있으며, 이사벨은 어쨌든 자신이 뤼지냥 가문과 다시 연결되어서 아들인 헨리 3세에게 도움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넘치고 넘치는 결혼이었습니다.
이자벨 당굴렘
이자벨의 묘에 있는 조상
당장 조앤의 상황이 애매했는데 이미 뤼지냥 가문에 와있었던 조앤은 이제 약혼자가 아니라 새아버지가 되어버린 휴 10세의 보호아래 있게 됩니다. 게다가 잉글랜드 의회에서 이사벨의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으며 그녀가 돌려받아야할 혼수등을 돌려주지 않게 되자 조앤은 인질처럼 지내게 됩니다. 휴 10세는 아내가 돌려받아야할 영지는 물론 조앤을 볼모로 잡고 있는 동안은 일단 조앤이 혼수로 가져온 영지를 지킬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교황의 중재로 이런 문제가 해결된뒤 조앤은 잉글랜드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앤에게는 곧 다른 혼담이 진행됩니다. 바로 스코틀랜드의 구왕 알렉산더 2세와의 혼담이었죠. 알렉산더 2세는 조앤의 아버지인 존 왕에 의해서 기사 작위를 받았었고 이때문에 아마도 조앤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았을 듯합니다.
1221년 11살 정도였던 조앤은 23살의 알렉산더와 결혼식을 올리고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조앤는 왕비로써 궁정에서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 알렉산더 2세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한때 스코틀랜드쪽에서는 조앤과 알렉산더의 결혼 무효를 심각하게 고려했었지만, 만약 조앤을 돌려보낸다면 세력이 더 컸던 잉글랜드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수 있었기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앤은 궁정에서 더욱더 위축되었을 것입니다.게다가 궁정에서는 비록 남편이 죽은후 나름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고 알려진 조앤의 시어머니 에멩가르드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었을때는 정치적으로 매우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했었으며, 남편이 죽은뒤에는 비록 종교에 헌신했다고 알려져있었지만 아들의 궁정을 자주 방문했고 결국 존재감 없었던 조앤은 시어머니인 에멩가르드에게 더욱더 가려져 더 존재감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알렉산더 2세의 씰
이런 생활은 조앤을 힘들게 했을 것이며 아마도 고향인 잉글랜드를 그리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1236년 조앤은 남편인 알렉산더와 함께 잉글랜드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조앤은 잉글랜드에 좀더 머물기를 바랬고, 조앤의 오빠이자 여동생을 아꼈던 헨리 3세는 동생에게 여러 영지를 주면서 동생이 머물수 있게 해줬습니다. 조앤은 잉글랜드에 머물면서 올케언니였던 프로방스의 엘레노어와 함께 토마스 베켓의 성유해가 모셔진 캔터베리로 순레를 떠나기도 했었습니다.
조앤은 1238년 사망했는데 이때 조앤의 두 오빠들인 헨리 3세와 콘웰 백작 리처드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뜻에 따라 도셋에 있는 수도원에 묻히게 됩니다. 동생을 사랑했던 헨리 3세는 동생이 죽은후에도 동생을 기렸으며 헨리 3세는 동생이 죽은지 10여년이 지난후에 동생의 무덤에 놓은 대리석 조각을 새기게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ㅠ.ㅠ 헨리 3세를 보면 가족한테 정말 애틋하게 잘했는데 말입니다.ㅠ.ㅠ 진짜 아들이 에드워드 1세인거 빼고는 별 위안이 안됐을듯해요.)
존 왕과 자녀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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