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10) 에르멩가르드 드 보몽 : 윌리엄 1세의 왕비

엘아라 2018. 1.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에르멩가르드만 지나면 이제 자료가 좀 있습니다. -0-;;;



스코틀랜드의 왕비들...(10) 에르멩가르드 드 보몽 : 윌리엄 1세의 왕비





에멩가르드 드 보몽

스코틀랜드의 왕비

Ermengarde de Beaumont

 (c. 1170 – 11 February 1233/1234) 

보몽가문의 문장



에멩가르드 드 보몽은 보몽 자작이었던 리샤르 드 보몽과 그의 아내인 루시 드 라이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에멩가르드의 아버지는 잉글랜드의 헨리 1세의 외손자였는데, 에멩가르드의 할머니가 헨리 1세의 사생아 딸이었던 콘스탄스 피츠로이 또는 모드 피츠로이로 알려져있습니다. 이것은 에멩가르드가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윌리엄 1세와 결혼하는데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멩가르드는 1186년 9월 옥스퍼드 근처의 우드스탁 궁의 로열 채플에서 스코틀랜드의 국왕 윌리엄 1세와 결혼을 합니다. 이 결혼은 헨리 2세와 윌리엄 1세 사이의 조약에 따라 헨리 2세의 결정으로 이뤄진 결혼이었습니다. 윌리엄 1세는 이 결혼협상에서 많은 이익을 얻게 됩니다. 그는 에멩가르드의 지위때문에 얻는 이익은 물론 혼수와 결혼 비용 모두를 헨리 2세가 부담했었기에 경제적 이익도 얻게 되죠.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1세


스코틀랜드의 연대기 저자였던 월터 보울러는 에멩가르드에 대해서 "매우 특출난 여인으로 매력적이며 위트있는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윌리엄 1세는 결혼전 애인들이 많았었지만 결혼이후 그는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았으며 이것은 에멩가르드가 왕비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에멩가르드에게 호의적이었으며 남편의 사랑과 대중의 신뢰는 에멩가르드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214년 남편인 윌리엄이 죽으면서 에멩가르드의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에멩가르드는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이전의 활발했던 모습과 달리 의욕이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렸었다고 합니다. 에멩가르드는 남편이 죽은뒤 많은 왕족 여성들처럼 종교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궁정을 자주 방문하기도 했었으며 이것은 그녀가 여전히 궁정에서 힘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에멩가르드와 윌리엄 1세 사이에서는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네명이 잇었습니다. 첫째는 딸인 마거릿으로 후에 켄트 백작 허버트 드 분과 결혼했습니다. 둘째 역시 딸인 이사벨라로 노퍽백작인 로저 비고드와 결혼했습니다. 셋째는 유일한 아들이었던 알렉산더로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됩니다. 막내는 딸인 마저리(Majorie)는 펌브로크 백작인 길버트 마셜과 결혼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취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