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아직 다 멀쩡해진것은 아닌데 그래도 쬐금씩 멀쩡해지고 있긴합니다.
ㅠ.ㅠ 사실 상태가 메롱해지기 전에 글쓸 계획을 세워놨었거든요.
흑...ㅠ.ㅠ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죠 뭐...-0-;;;
그냥 왕비들 이야기를 계속 쓸려고 했는데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문제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고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볼까합니다. 스코틀랜드사는 저도 잘 몰라서..ㅠ.ㅠ 일단 적으면서 제가 좀 이해해볼려고 합니다. -0-;;;;;;
스코틀랜드의 왕비들...번외편3. 알렉산더 3세 사후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문제
1286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알렉산더 3세가 사망했을때 그의 후손으로는 유일하게 3살이었던 노르웨이의 공주였던 마르그레테만이 있었다. 마르그레테는 노르웨이에 있었고 어렸기에 스코틀랜드 왕위가 비게되자 야심있는 귀족들이 왕위계승을 노리게 된다. 이런 혼란한 상황은 1290년 섭정단이 구성되고 잉글랜드와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해결된다. 노르웨이에 있는 어린 마르그레테가 스코틀랜드로 와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로 여왕으로 즉위하기로 한것이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잉글랜드의 지원도 있었는데 마르그레테는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이었던 카나본의 에드워드(에드워드 2세)와 결혼하기로 했었고 그래서 잉글랜드가 지원을 했던 것이다. 후에 카나본의 에드워드와 마르그레테가 결혼해서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 아들은 브린튼 섬 전체를 통치하는 인물이 될수 있었으며 적어도 그의 가문이 브리튼섬 전체를 통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분리된 왕국이라고 명시하긴 했었지만 그것은 정치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수 있는 문제였다.)
사실 이전에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오래전부터 스코틀랜드를 자신의 영향력아래 있다고 여겼었으며 특히 뛰어난 기사이자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1세는 잉글랜드의 세력을 확장하길 원했고 스코틀랜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알렉산더 3세의 경우 처남이었던 에드워드 1세에게 자신의 왕국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노르웨이의 마르그레테가 스코틀랜드에 상륙하기도전에 죽자, 스코틀랜드 내에서는 다시 한번 왕위계승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다시 모두가 인정했던 왕위계승자가 사라지자 강력한 귀족들은 서로 자신이 국왕이 되려했다. 이들이 서로 국왕이 되려 했었기에 섭정단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좋을 지 몰랐다. 만약 이들이 선택한다면 국왕이 되지 못한 다른 이들이 반발을 일으키고 왕국이 흔들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섭정단들은 원래 강력하게 영향력을 했었으며 죽은 마르그레테의 약혼자였던 카나본의 에드워드의 아버지였던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게 왕위계승자를 선택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 될것을 우려해서 이를 승락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왕위계승 후보자들의 가계도
에드워드 1세와 섭정단은 단순히 강력한 후보자들 말고도 계승권을 주장할수 있는 다양한 귀족들을 후보로 뽑았고 이들중에서 스코틀랜드의 국왕을 선출하기로 했다. 이들 후보들중 유력한 후보는 네명이었는데 각각의 논리들이 있었다.
먼저 존 해스팅스가 있었다 해스팅스 남작인 존 해스팅스는 데이비드 1세의 후손중 하나로 그의 할머니는 데이비드 1세의 증손녀였으며 스코틀랜드에 영지가 많았었다. 그는 스코틀랜드가 정식 왕국이 아니기에 직계 후손이 단절된 스코틀랜드는 후손들간에 영지를 골고루 분배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그의 주장은 스코틀랜드를 갈가리 찢는 것으로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당연히 그를 지지할 리가 없었다.
존 해스팅스의 씰
두번째로는 존 발리올이 있었다. 그와 로버트 드 부르스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왕위계승 후보로 여겨지던 인물이었다. 그 역시 데이비드 1세의 후손으로 그의 외할머니인 헌팅든의 마거릿은 데이비드 1세의 증손녀이기도 했었다. 그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상속지위를 주장했다. 바로 장자상속제였다. 남성직계후손이 단절된 이후 여성후손들중에서도 나이순서의 상속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전의 상속문제에서도 제시된 방법으로 특히나 스코틀랜드 전체를 그가 상속받을수 있게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좋아할만한 주장이기도 했다.
존 발리올
세번째로는 존 발리올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왕위 계승을 주장한 로버트 드 부르스였다. 로버트 드 부르스 역시 존 발리올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1세의 후손이었는데 그의 어머니인 헌팅든의 이사벨라는 데이비드 1세의 후손이자 존 발리올의 이모이기도 했다. 이사벨라의 큰언니였던 마거릿의 외손자가 존 발리올이었다. 그는 존 발리올보다는 왕위계승권이 약했는데, 그는 존 발리올의 연장자이기도 했으며, 알렉산더 3세때 후계자로 고려되기도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존 발리올 역시 같은 지위를 가졌었다고 여겨졌었기에 존 발리올보다는 덜 강력한 왕위게승권자였다.
로버트 드 부르스의 씰
마지막으로는 홀란드와 질란드의 백작이었던 플로리스 5세였다. 그는 홀란드 지역의 군주이자 플랑드르와 직접적 연결되는 가문으로 그의 고조모였던 아다는 데이비드 1세의 손녀이자 말콘 4세와 윌리엄 1세의 누나이기도 했다. 그는 사실상 바다 건너 홀란드의 군주였고 다른 셋보다는 훨씬 계승권리에서 밀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머나먼 지역으로 시집보낼경우 권리를 포기시키기도 했는데, 이경우는 어땠는지 잘 모르겠네요.)
기욤 2세(왼쪽, 플로리스의 아버지)와 플로리스 5세
이외에도 많은 후보자들이 있었지만 1292년 11월 17일 에드워드 1세는 가장 강력한 후보중 하나였던 존 발리올을 선택했다. 존 발리올을 선택한 이유는 에드워드 1세가 여전히 스코틀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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