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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68) 레이디 앤 팔머(피츠로이) : 찰스 2세의 딸 (?)

엘아라 2018. 2.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찰스 2세와 레이디 캐슬마인의 자녀들 이야기군요.

음..그러고보니 프랑스의 루이 14세나 앙리 4세때도 뭐 이런 분위기였던것같네요. -0-;;;;


정부들과 그 후손들...(168) 레이디 앤 팔머(피츠로이) : 찰스 2세의 딸(?) 




레이디 앤 팔머, 레이디 앤 피츠로이

앤 레널드

서섹스 백작부인

Anne Lennard (née Palmer), 

Countess of Sussex 

(25 February 1661 – 16 May 1721 or 1722), 

 Lady Anne Fitzroy

어린시절


후에 서섹스 백작부인이 되는 앤 팔머는 1661년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캐슬마인 백작부인이었던 바바라 팔머로 당시에 국왕 찰스 2세의 정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때 캐슬마인 백작인 로저 팔머는 앤을 자신의 딸이라고 여겼는데, 국왕 찰스 2세 역시 앤을 자신의 딸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앤이 바바라의 연인이었던 체스터필드 백작 필립 스탠호퍼의 딸이라고 여기기도 했는데 앤이 체스터필드 백작과 많이 닮았었다고 이야기되기 때문입니다.



앤의 어머니 바바라 팔머 (바바라 빌리어스), 레이디 캐슬마인



어쨌든 태어났을때는 캐슬마인 백작의 성을 따라 "앤 팔머"가 되었지만 후에 찰스 2세는 바바라의 자녀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했고 이때 찰스 2세는 앤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해서 "피츠로이"(국왕의 자녀라는 의미)라는 성을 부여했습니다. 이후 앤은 "레이디 앤 피츠로이"로 불리게 되죠.


앤은 1674년 8월 11일 13살의 나이로 20살이었던 15대 데이커 남작인 토마스 레날드와 결혼을 합니다. 같은날 10살인 앤의 동생인 레이디 샬럿 피츠로이 역시 결혼식을 올렸었습니다. 찰스 2세는 두딸의 혼수와 지참금을 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앤의 남편인 토마스 레날드에게 서섹스 백작 지위를 줬고 이후 앤 역시 서섹스 백작부인이 됩니다.


앤은 서섹스 백작과 그리 행복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앤이 스캔들에 휘말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1676년 앤은 첫아이를 낳았습니다만 그때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을 만납니다. 바로 만치니 자매들중 하나였던 오르탕스 만치니였죠. 오르탕스 만치니는 마자랭 추기경의 조카로 특히 그녀의 언니인 마리 만치니는 루이 14세의 첫사랑으로 유명한 여성이었죠. 오르탕스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그녀의 남편은 질투심이 너무 강해서 결국 결혼에 실패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르탕스는 잉글랜드로 와서 찰스 2세의 정부가 됩니다. 아마도 프랑스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로 만들려했을듯해지만 결과적으로 그 지위는 루이즈 드 케루얄이 맡게 되죠. 이때 오르탕스와 서섹스 백작부인인 앤이 묘한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스캔들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멀리 떼어놓았다고 합니다.



오르탕스 만치니, 찰스 2세의 정부, 앤의 연인(?)


하지만 앤은 또한번의 스캔들에 말려들게 됩니다. 1678년 앤은 궁정을 떠나 프랑스에서 살고 있던 어머니 바바라와 함께 있게 되는데 바바라는 딸을 수도원에서 찾아내는데 이때 17살이었던 앤은 당시 프랑스 주재 잉글랜드 대사였던 랄프 몬태규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랄프 몬태규는 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었는데, 그는 앤보다 20살 이상 더 많았으며 심지어 앤의 어머니인 바바라의 애인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앤의 어머니인 바바라는 앤의 아버지인 찰스 2세에게 이 사실을 편지로 알렸는데 편지에는 이 사실에 바바라는 매우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랄프 몬태규

1대 몬태규 백작


이후 앤에 대한 삶은 별기록이없는데 아마도 스캔들을 막기 위해 앤은 남편에게 돌려보내졌던듯합니다. 왜냐면 1780년대 이후 앤과 서섹스 백작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들이 더 태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앤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는 것은 앤이 큰 스캔들을 안 일으키고 조용히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듯합니다.앤의 남편인 서섹스 백작은 인기있었지만 매우 낭비벽이 심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도박빚등으로 인해서 영지등을 팔아야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부부를 갈라놓았고 1688년 부부는 정식으로 별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앤의 남편인 서식스 백작은 1715년 사망했으며 앤은 1721년 또는 1722년 사망했습니다.


앤과 서식스 백작 사이에서는 아들 둘 딸 둘이 태어났습니다만 아들 둘은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딸 둘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막내딸인 앤 레날드만이 후손이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서섹스 백작 지위는 비게 되었으며, 앤 레날드가 데이커 여남작으로 데이커 남작 지위를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현 데이커 남작 가문은 이 앤의 후손들입니다.


17대 데이커 남작 토마스 바렛-레날드

레이디 앤의 외손자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