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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66) 바바라 빌리어스 : 찰스 2세의 정부(두번째)

엘아라 2018. 2.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랄까..귀족들이 바람핀 이야기들을 보면...흠..

다양한 스캔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전에 봤던 BBC드라마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내를 맨날 다른 남자와 자게하면서 그걸 훔쳐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던..

흑..단지 거기 변태로 나오던 남편역할을 맡은 배우가 좋아하는 배우였다는...흑...


정부들과 그 후손들...(166) 바바라 빌리어스 : 찰스 2세의 정부(두번째)




바바라 빌리어스

바바라 팔머

클리브랜드 공작부인(여공작)

캐슬마인 백작부인

Barbara Palmer, 1st Duchess of Cleveland 

(27 November [O.S. 17 November] 1640[1] – 9 October 1709),

Barbara Villiers 

 Countess of Castlemaine


야심 가득한 남편인 로저 팔머와 함께 바바라는 네덜란드로 갔으며 그녀가 오래도록 들어왔던 왕자님인 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바바라는 곧 찰스의 정부가 되죠. 1660년 왕정 복고가 이뤄지면서 찰스는 잉글랜드의 국왕 찰스 2세가 됩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를 따랐던 많은 이들이 잉글랜드로 돌아왔으며 여기에는 바바라와 그녀의 남편도 포함되었습니다.



찰스 2세 

망명시기


바바라는 이제 국왕의 정부가 되었는데, 찰스 2세는 바바라의 남편인 로저 팔머에게 "리머릭 남작과 캐슬마인 백작"지위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로저 팔머의 아내인 바바라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바바라는 "캐슬마인 백작부인"으로 보통 "레이디 캐슬마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1661년 바바라는 첫째아이인 앤을 낳습니다. 이때 찰스 2세와 로저 팔머 모두 앤이 자신의 딸이라고 여겼었다고 합니다. 바바라는 로저 팔머의 아내였기에 앤은 앤 팔머로 알려집니다만 후에 찰스2세로부터 "피츠로이"라는 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재미난 것은 많은 이들이 바바라의 큰딸인 앤이 바바라의 첫사랑이자 또다른 애인이었던 체스트필드 백작 필립 스탠호프와 많이 닮았다고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바바라와 캐슬마인 백작은 1662년 바바라가 둘째이자 아들인 찰스를 낳으면서 정식으로 별거에 합의합니다. 찰스는 확실히 찰스 2세의 아들이었으며 아마도 캐슬마인 백작은 이제 국왕의 정부로 국왕의 아이를 낳는 아내와 함께 지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캐슬마인 백작은 가톨릭 교도였기에 결국 이혼은 하지 않았으며 그는 결국 죽을때까지 바바라와의 결혼 관계는 유지했었습니다.



아들 찰스 피츠로이와 함께 있는 바바라 


1662년 바바라는 이제 국왕의 공식 정부로 점차 궁정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국왕에게 아이들을 낳아주었으며 찰스 2세는 그녀에게 꼼짝 못하는 것처럼 보였었죠. 1662년 찰스 2세는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인판타 카타리나와 결혼했습니다. 인판타 카타리나는 찰스 2세의 왕비로 영국에서는 캐서린이라고 불리게 되죠. 바바라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녀는 찰스 2세에게 왕비의 시녀장 자리를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캐서린 왕비는 국왕의 정부를 자신의 시녀장으로 들일수 없다고 화를 냈으며 국왕의 조언자였던 클라렌던 백작 에드워드 하워드 역시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바바라가 승리했는데 국왕은 조언자의 조언을 무시했으며 바바라를 시녀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왕비를 궁정에서 고립시키므로써 결국 바바라를 시녀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바바라가 이제 왕비도 안중에 없는 궁정에서 최고의 실력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브라간사의 카타리나

찰스 2세의 왕비

그녀는 결혼초 남편인 찰스 2세에게 냉대를 받았으며, 바바라를 시녀장으로 임명하라고 강요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할수 있는 일은 그저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었는데 이런 그녀에 대해서 찰스 2세는 점차 호의적이 되어갔으며 나중에는 늘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미안한 감정은 아내에 대한 애틋함으로 바뀌어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궁정에서는 바바라와 국왕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가지 소문들이 돌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1663년 캐서린 왕비가 사경을 헤메고 있었을때, 찰스 2세는 그때 왕비의 시녀였던 프랜시스 스튜어트에게 반해버렸고 만약 왕비가 죽는다면 그녀와 결혼하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 스튜어트가 국왕의 정부가 되는 것을 거절했을때, 찰스 2세가 아내와 이혼하려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죠.그리고 이때문에 바바라가 찰스 2세에게 매우 화를 냈고 국왕과 잠시 냉전관계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바바라는 1661년부터 1665년사이에 매년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는 모두 찰스 2세의 아이라고 여겨졌었습니다. 이것은 이 사이에 궁정에서 어떤 소문이 돌았던 간에 찰스 2세와 바바라의 관계가 매우 돈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레이디 캐슬마인

1660년대


바바라는 아름다웠고 재치있는 여성이었지만, 탐욕스러웠으며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왕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는 했었습니다. 또 정치에도 관여를 했으며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치인들을 사정없이 비난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면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이를테면 극장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다쳤을때,바바라는 궁정 여성들 중에 유일하게 다친 아이에게 가서 그 아이를 보호했었다고 합니다.


바바라와 찰스의 사이는 아마도 점차 멀어져갔을 것입니다. 물론 불같은 성격의 바바라를 찰스 2세가 감당할수 없었지만 찰스 2세에게는 수많은 정부들이 있었으며 넬귄이나 루이즈 드 케루얄같이 궁정에서 지위를 가지는 여성들이 생기게 됩니다. 게다가 찰스 2세는 아내인 캐서린 왕비에게 점차 더 호의적이 되어가는데 왕비에 대해서 더 다정하게 대했고 나중에는 자신의 정부들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상관없었던것과 달리 왕비가 시종무관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마저도 질투할정도로 왕비를 아끼게 되죠. 이런 상황은 바바라의 위치를 점차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찰스 2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