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16) 에필로그 (첫번째)

엘아라 2018. 1.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자녀들과 그 후손들 이야기 쓰다가 너무 양이 많아서 다 지우고 그냥 에필로그로 쓸까합니다만...

그래도 많습니다..흑..ㅠ.ㅠ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16) 에필로그 (첫번째)


마리야의 네자녀들은 모두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는 결혼을 했었다. 그리고 이것은 1차대전이후 유럽 왕실들이 몰락해가는 것을 네자녀들 역시 경험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리야의 네딸들


마리야의 장녀이자 루마니아의 사랑받는 왕비가 된 미시는 매우 이제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 결혼생활의 행복을 포기했지만 남편과는 늘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으며 서로의 정부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려운 1차대전을 겪으면서 남편은 이제 전우이자 동지이며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루마니아의 사랑받는 왕비이자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하려했던 미시에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자녀들 문제였다. 그중 최고는 장남인 카롤이었다. 그는 왕위계승자로 허용되지 않는 결혼을 했다가 취소하기도 했고, 그리스의 공주와 결혼했지만 결국 둘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 다른 여자와 함께했고 결국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되기까지 했다.

마리는 어린 손자가 즉위하는 것을 보았지만 섭정단의 문제로 인해서 카롤이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봤다. 그녀는 아들이 제대로 된 국왕이 되길 바랬지만 카롤2세는 어머니의 인기를 질투했으며 결국 나라밖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이후 죽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루마니아로 돌아갔었다.




어린 미하이 국왕과 가족들

맨 왼쪽 여자가 미시, 그 옆의 여자가 미하이의 어머니인 엘레니이고 그 옆으로 미시의 두딸인 엘리자베타와 일레이나 그리고 마지막이 엘리자베타의 남편이자 엘레니의 오빠인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2세

앞에서  바른 자세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소년이 미하이 전 국왕입니다.


마리가 죽은후 카롤 2세는 나라를 망쳤고, 뒷수습도 하지 않고 그냥 정부와 함께 한재산챙겨서 도망갔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통해서 책임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마리의 손자인 미하이는 어린나이부터 나라를 짊어져야했고 결국 루마니아가 공산화될 무렵에서는 내전을 우려해서 퇴위한뒤 루마니아를 떠났었다. 루마니아를 떠난 뒤에도 미하이는 루마니아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으며 결국 1990년대 이후 루마니아로 다시 되돌아갈수 있었다. 



카롤 2세와 미하이 

맨 왼쪽의 무표정한 사람이 미하이 전국왕입니다. 가운데가 카롤 2세

아버지랑 있는 모습을 보면 불행해하는 것이 보여서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죠.



마리의 다른 자녀들 역시 마리의 걱정거리들이었다. 엘리사베타는 그리스 국왕과 결혼했지만 둘은 사이가 나빠졌고 특히 그리스가 공화국이 되어서 망명을 떠나야했을때 사이는 극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둘은 이혼했으며 엘리자베타는 루마니아에 살면서 "야심이 크다"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녀는 스스로 "살인빼고 나쁜짓은 다했다"라고 할정도였는데 이것은 그만큼 마리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딸인 마리아는 언니인 엘리자베타에게 가려서 매우 소심한 여성으로 자라났지만 결국 유고슬라비아의 국왕 알렉산다르 1세와 결혼했지만 그는 자녀들이 어릴때 암살당했으며 마리아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과부로 조용히 살았었다. 



마리와 두 딸인 엘리자베타와 마리아

엘리자베타는 그리스 왕비가 되고 마리아는 유고슬라비아 왕비가 됩니다.


아들인 니콜라예는 형과 사이가 나빴고 형제의 불화는 어머니의 근심이기도 했다. 물론 카롤은 자신이 왕이 된뒤 동생을 추방했다. 일레이나는  형제 자매들이 제일 사랑한 동생이었으며 심지어 카롤 2세도 매우 예뻐한 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카롤 2세는 여동생을 예뻐한것과는 별개로 동생을 멀리 시집보내버릴려고 했고 결국 오스트리아 대공과 결혼했지만 그 결혼도 행복하지는 않았었다. (재미난것은 후에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의 소유권이 한 미국인에게 넘어간 사실이었다. 그는 바로 일레이나의 후손으로 일레이나가 이 성을 물려받았기에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루마니아에서 이것이 받아들여진것이었다.)



니콜라예와 일레이나와 함께 있는 마리 왕비


현재 루마니아는 공화국이며 미하이 전 국왕은 생전에 루마니아가 왕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다고 봤으며 죽기직전에는 왕가가 지속될 필요성도 못 느꼈었다. 그가 가문에 회의적이 된것은 그의 조카때문이었다. 지지 람브리노의 손자인 파울은 딸밖에 없는 미하이의 후계자가 되어야한다고 온갖 종류의 소송이나 여론몰이등을 진행했고 심지어는 후계자가 될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인공수정과 대리모 출산이 의심되는 아들까지 얻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미하이는 아마 큰 회의감에 빠졌을 것이다. (저 파울을 보면 "그래 넌 딱 네 할아버지 손자구나"라는 느김이 든다죠. 제가 가장 짜증났던 부분은 2차대전중 루마니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이 미하이 책임이라고 우겼던 부분이라죠. 미하이가 그때 꼭두각시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렇게까지 미하이의 명예를 더럽히고 끌어내려서 자기가 올라서려한다는 것에 진짜 짜증나더라구요.) 현재 미하이의 딸인 마르가레타와 미하이의 조카인 파울 둘다가 루마니아 왕가의 수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File:ReginaAnaSiRegeleMihaiParjs.jpg

미하이 전 국왕과 안 왕비

1991년


마리는 어머니 마리야가 겪었던 몰락은 겪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는듯한 행위를 당했고 이것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몰락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후에 카롤 2세가 망명한뒤 에스파냐에 사는 이모 베아트리스를 만나러 갔을때 베아트리스는 조카에게 "내 언니를 죽인 인물"이라고 지칭하면서 만나길 거절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카롤은 미하이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미하이는 한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루마니아의 마리 왕비



더키 역시 이후에 힘든 삶을 살았다. 러시아에서 도망쳤을때 더키는 임신중이었다. 40살의 나이로 임신한것은 당시에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고 핀란드에서 아들인 블라디미르를 낳았다. 이것은 키릴에게 제위 주장의 정당성을 가중시켜주는 것이었다. 망명후 더키는 남편인 키릴이 러시아 제위 요구자로 사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려했다. 그녀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때문에 배를 탈수 없는 키릴을 대신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남편의 지지자를 모았다. 하지만 더키는 키릴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키릴의 외도때문이었을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내용은 모두가 알지 못했다. 단지 미시는 더키가 너무나 큰 배신감에 키릴과 더이상 함께하는 것을 원치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었지만, 미시는 죽어가던 더키가 키릴의 손길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배신감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는 것을 알았다.



더키와 키릴 그리고 둘의 세아이들

블라디미르가 어린걸 보니 아마 핀란드에서 정도일듯하네요.



더키의 큰딸인 마리야는 라이닝겐 공과 결혼했었는데 부모는 딸이 좀더 높은 지위의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것에 살짝 실망스러워했다고 한다. 더키의 둘째딸인 키라는 독일의 빌헬름 2세의 손자이자 황태자 빌헬름의 아들인 루이스 페르디난트와 결혼했다. 루이스 페르디난트의 형이 귀천상혼했기에 후에 루이스 페르디난트가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키라와 루이스 페르디난트 그리고 루이스의 할아버지인 독일의 빌헬름 2세


더키의 막내이자 아들인 블라디미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문의 수장 지위를 주장했다. 비록 키릴은 정당한 계승요구자였지만 그는 여러가지로 다른 황실 가족들에게 미움받는 대상이었다. 혁명직후 키릴은 제일먼저 의회에 충성을 맹세한 인물로 황실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었다. 게다가 망명후에는 아들과 그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황태후를 위해 황태후가 죽을때까지 황실내에서 황위계승요구하지 말자고 합의를 했었다. 하지만 키릴은 이 합의를 깨고 자신의 황위계승을 주장했고 이것 역시 다른 황실 가족들이 그에게 등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복잡한 문제는 블라디미르가 정당한 계승 요구자였음에도 말이 많은 상황을 만들었는데 그가 선택한 아내와 그의 후계자 역시 더 많은 분란을 가져왔다. 그는 바그라티온 가문의 여성과 결혼했는데, 황위계승자가 되려면 귀천상혼하지 않아야하는 법이 있었다. 그런데 바그라티온 가문은 러시아에서 "귀족"이나 다름없었고 황실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이가문과 결혼하는 것은 귀천상혼으로 여겨졌었다. (물론 황제가 허락했던 결혼이라고 주장했지만 하여튼 복잡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딸인 마리야만이 태어나자 그는 가문의 수장임을 내세워서 딸인 마리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더키와 키릴 그리고 키라와 블라디미르


이문제는 매우 복잡한것으로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봤을때 그는 가문의 수장이라는 명목으로 귀천상혼했고 파벨1세 이후 여성 계승을 금지했던 러시아 황실 법을 무너뜨린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가 수장이기에 바꾸는 것은 정당하다고도 볼수 있지만 그전까지 그가 황위계승을 주장하면서 다른 대공들의 후손들 모두가 귀천상혼한 가문 출신이라는 명목으로 계승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던것과 여성계승을 주장한다면 이전에 여성 후손들 역시 계승권을 주장할수 있었기에(심지어 이들은 귀천상혼 안한 사람들도 많은 대표적인 예가 누나인 키라의 후손들...)역시나 복잡한 문제이다. 


현재 로마노프 가문의 수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한명이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이다. 그리고 사실 명분은 마리야쪽이 더 있는 것은 맞긴하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