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드디어 마지막이군요.ㅠ.ㅠ 물론 뒤에 자녀들 이야기가 더있습니다만 일단 마리야의 삶은 여기서 끝입니다. (자녀들 이야기는 토요일-일요일에 올라갑니다.)
뭐랄까 왠지 질질 끌었다는 느낌이랄까요..ㅠ.ㅠ
[새해특집]황제의 딸, 여제의 며느리 그리고 "코부르크 부인" : 러시아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15) 마지막
1차대전으로 마리야는 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마리야의 개인 재산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러시아에서 제정의 몰락하면서 마리야의 재산 대부분도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마리야는 다른 많은 왕족들처럼 자신의 보석 콜렉션을 팔아야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사실 마리야는 어느정도 나은 편이었는데 몇몇 러시아 황족들이나 귀족들은 몸만 겨우 빠져나와서 그들의 재산은 거의 찾을수 없어서 더욱더 힘든 삶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리야는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녀의 재정 상태는 예전에 비하면 거의 길바닥에 나 앉은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리야는 스위스의 호텔의 낡은 부속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이 집에 대해서 미시의 딸이었던 루마니아의 일레이나 공주는 "끔찍하게 작은 편션"으로 마치 "쉼터"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마리야는 이곳에서 매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은 그녀의 사랑하는 러시아나 새로운 조국인 독일을 그녀가 알았고 살았던 곳과 전혀 다른 곳으로 바꾸었다. 마리야가 "여대공"이라고 칭할수 있었던 러시아 제정은 붕괴되었으며 러시아는 공화국이 되었다. 또 그녀의 나라였던 작센-코부르크-고타 역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그녀는 러시아의 여대공,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쓰긴 했지만 이 칭호는 의례적인 칭호였을뿐 실질적인 지위가 아니었다.
더키와 에르니의 결혼식때 모였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와 친척들
아마도 이때쯤이 마리야의 결혼후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닐까합니다.
친정의 몰락, 친척들의 비참한 죽음, 사회적 지위의 몰락, 경제적 어려움등이 마리야에게 한꺼번에 몰려왔으며 이것은 마리야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전쟁이 끝난뒤 딸들은 다시 어머니를 만나러 왔지만 큰딸인 미시와 마리야의 사이는 어느정도 서먹하게 지냈다. 비록 어머니로써 딸의 안위를 걱정했었지만 마리야는 전쟁에서 연합군을 지지했던 딸의 행동에 대해서 여전히 서운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지위가 몰락하면서 이 감정은 더욱더 없어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런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마리야의 막내사위였던 알리가 이 사이에서 많은 중간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마리야와 미시의 관게는 옛날처럼 다정하게는 돌아가지 못했다.
1920년이 되면서 마리야의 건강은 더욱더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화를 더 잘내게 되었다. 미시는 어머니를 다시한번 방문했을때 어머니와 다시 한번 끔찍한 상황을 맞닥들여야했다. 아마도 마리야는 자신의 처지를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일 것이다.
마리야의 올케이자 사돈이었던 미헨 대공비는 러시아에서 간신히 탈출했었고 그녀는 시누이인 마리야를 만나러 왔었다. 혁명전 미헨 대공비는 당당한 체격에 화려함을 좋아하던 여성이었지만 혁명이 일어난뒤 간신히 러시아에서 탈출하고 난뒤 급격하게 쇠약해지고 병들었다. 탈출후 키릴이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때 처음에는 어머니를 못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이런 미헨과 역시나 병들고 좌절감에 빠져있던 마리야가 만났을때 당연 분위기는 안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둘은 서로에 대해서 어느정도 공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둘다 1차대전으로 모국과 조국(러시아와 독일)이 몰락했었으며, 이전에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이제 (예전보다는 많이) 가난하고 병든 늙은이들이었을 뿐이었다.
마리야는 1920년 10월 25일 67번째 생일이 지난 8일후에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잠을 자던중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는데 이때문에 마리야가 그녀를 단순히 "코부르크 부인"이라고 부르는 글에 충격을 받아서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다. 사실 그 전달인 9월에는 마리야의 올케였던 미헨 대공비가 사망했었으며 아마도 마리야는 이 소식에 어느정도 충격을 받은 것일수도 있었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황제의 딸로 태어나서 여제의 며느리가 되었다. 마리야는 어린시절은 매우 행복했지만 그녀가 결혼할 무렵부터 불행이 찾아왔었다 가정적 불행과 아버지의 외도는 아마 마리야에게 러시아 황실 가족들의 상황에 눈을 뜨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머나먼 나라의 왕자님과 행복을 꿈꿨으며 결국 러시아에서 가장 멀리 떨어졌으며 러시아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영국의 왕자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그녀가 꿈꿨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영국에서의 어려움은 그녀의 불행을 가중시켰기에 결국 그녀는 영국과 시댁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고향 러시아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새로운 조국이 된 독일(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마리야는 자신이 원했던 삶을 어느정도 누릴수 있는듯했지만 이전의 불행은 새로운 조국까지 따라왔고 결국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유럽의 모든 왕족들이 영향을 받았던 1차대전은 마리야에게 사랑했던 러시아와 독일을 바꾸었으며 친척들의 비참한 죽음을 겪게 했고, 자신의 상황 역시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마 이런 고난은 마리야가 삶에 대한 의지를 점차 약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삶은 그녀가 죽을 무렵의 절망적 상황과 그녀가 태어났을때의 화려하고 행복했던 상황때문에 더욱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러시아의 여대공
에든버러 공작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