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시리즈는 진짜 오랫만에 하는 듯하네요 -0-;;;;;;
정부들과 그 후손들...(153) 캐서린 캐리 : 헨리 8세의 딸(?)
캐서린 캐리
레이디 노리스
Catherine Carey,
Catherine Knollys
Lady Knollys
(c. 1524 – 15 January 1569),
캐서린 캐리는 1524년경 헨리 8세의 궁정 조신이었던 윌리엄 캐리와 그의 아내인 메리 불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메리 불린은 헨리 8세의 정부였었기에 윌리엄 캐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헨리 8세의 자녀로 의심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캐서린 캐리는 자라면서 헨리 8세를 닮아갔기에 많은 사람들이 헨리 8세의 딸로 여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헨리 피츠로이 외에는 어떤 아이도 자신의 아이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캐서린 캐리 역시 헨리 8세가 자신의 자녀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캐서린의 어머니
메리 불린
캐서린 캐리와 그녀의 동생인 윌리엄 캐리는 어머니인 메리 불린이 궁정 출입을 금지 당한 뒤 이모이자 왕비였던 앤 불린이 후견인이 되어 아이들의 양육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앤 불린은 처형당하게 되죠. 캐서린은 앤 불린이 처형당하기 전날 이모와 함께 런던탑에서 지냈었다고 합니다.
이모인 앤 불린이 처형당했지만 캐서린은 여전히 궁정에 남았었습니다. 캐서린은 헨리 8세의 네번째 아내인 클레이브의 앤과 다섯번째 아내인 캐서린 하워드의 시녀로 궁정에서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1540년 캐서린은 기사였던 프랜시스 노리스와 결혼합니다. 캐서린은 프랜시스 노리스와 결혼한 뒤 노리스 마님(Mistress Knollys)나 레이디 노리스로 불리게 됩니다. 캐서린과 프랜시스 노리스는 런던에 살지 않았으며 버크셔나 옥스퍼드셔등에서 살았었습니다.
sir 프랜시스 노리스
캐서린의 남편
캐서린과 그녀의 남편은 신교도였고,캐서린은 앤 불린의 조카로 엘리자베스의 사촌이었기에 메리 1세가 즉위 한뒤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메리 1세는 동생인 엘리자베스를 정적으로 여겼기에 어린시절과 달리 매우 경계했었습니다. 캐서린과 노리스경은 독일로 가서 한동안 망명생활을 했었습니다.
사촌인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캐서린은 사촌의 시녀장이 되어 궁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캐서린을 정말 좋아했고 여왕이 가장 아끼는 사촌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엘리자베스 역시 캐서린은 이복 언니로 인정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캐서린과 프랜시스 노리스 사이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중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만해도 열네명이나 됩니다. 특히 캐서린의 자녀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캐서린의 딸이었던 레티스 노리스일것입니다.그녀는 한사람과의 연애 관계로 유명했습니다. 바로 엘리자베스 1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알려진 남자인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였습니다. 레티스 노리스는 1대 에섹스 백작 윌리엄 드브뢰과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은뒤 로버트 더들리와 재혼했었습니다. 그리고 레티스의 아들인 2대 에섹스 백작 로버트 드브뢰는 로버트 더들리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있었으며 로버트 더들리가 죽은뒤 엘리자베스 1세가 가장 총애했던 신하이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2대 에섹스 백작은 반란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레티스 노리스
에섹스 백작부인
레스터 백작부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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