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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51)메리 불린 : 헨리 8세의 정부(두번째)

엘아라 2017. 7.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 노트북 수리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이제 잘 되고 있는데 글 안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도통 글쓰는데 집중이 안되네요

-0-;;;;;

뜬금없이 시원해져서 딱 좋은 이때 글좀 써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151)메리 불린 : 헨리 8세의 정부(두번째)




메리 불린

Mary Boleyn

(c. 1499/1500 – 19 July 1543)


1515년 1월 결혼 석달만에 메리 튜더는 과부가 되었으며 곧 잉글랜드로 돌아오게 됩니다. 메리 튜더가 석달 정도 프랑스에서 머무는 동안 메리 불린은 궁정의 연애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여겨졌는데 바로 루이 12세의 사위이자 후계자였던 프랑수아 1세가 메리 불린을 정부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훗날 프랑수아 1세는 메리 불린에 대해서 "The English Mare", "my hackney","una grandissima ribalda, infame sopra tutte"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많은 이들이 프랑수아 1세와 메리 불린과 연애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이것은 프랑수아 1세의 허풍이며, 메리 불린이 프랑스 궁정에서 얌전히 지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메리 불린은 1520년 이전까지 행적이 정확히 나타나지 않는데, 이때문에 메리가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메리 튜더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메리가 결혼하기 전까지 프랑스 궁정에 계속 머물렀다고 주장하는 사람 역시 존재합니다. 메리가 프랑수아 1세의 정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메리가 계속 프랑스 궁정에 머물렀다고 주장하는 반면, 메리가 프랑수아 1세의 정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메리가 바로 돌아왔다고 주장합니다. 어쨌든 메리 튜더는 1520년 경 잉글랜드로 돌아오는데 아마도 이는 동생인 앤처럼 결혼을 위해서 잉글랜드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메리 불린은 아마 그와도 연애 관계였을 것이라 추정됩니다만 프랑수아 1세와 연애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메리 불린은 헨리 8세의 왕비인 캐서린 왕비의 시녀가 되었으며 아마도 이때 헨리 8세가 메리 불린을 만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메리 불린이 정확히 언제 국왕의 정부가 되었는지는 알수 가 없는데 1522년경에는 그녀가 국왕의 정부라는 사실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알려져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메리 불린이 1520년 남편과 결혼하기전 이미 헨리 8세가 그녀에게 반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헨리 8세의 정부이자 아들을 낳았던 벳시 블런트는 1519년 국왕과의 관계를 서서히 정리하게 됩니다. 벳시 블런트 역시 1520년 결혼했으며 이것은 국왕인 헨리 8세가 메리 불린에게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헨리 8세는 복잡한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부녀 정부들을 얻기로 결심했으며, 정부였던 벳시 블런트나 메리 불린을 결혼시켰다는 것입니다.


1520년 메리 불린은 윌리엄 캐리라는 인물과 결혼합니다. 그는 매우 부유한 궁정조신이었으며, 어머니를 통해 국왕인 헨리 8세와 먼 친척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외할머니는 레이디 엘리너 보퍼트로 레이디 엘리너는 헨리 7세의 어머니였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와 사촌관계였습니다. 이때문에 헨리 8세와 윌리엄 캐리는 8촌관계였었죠. 또 윌리엄 캐리의 이모는 노섬벌랜드 백작과 결혼했었는데, 메리 불린의 동생인 앤 불린이 몰래 약혼했었던 노섬벌랜드 백작이 바로 윌리엄 캐리의 이종사촌이기도 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식때 헨리 8세가 참석하기도 했는데, 신랑인 윌리엄 캐리는 국왕의 먼 친척이었으며 신부인 메리 불린은 헨리 8세의 중요한 신하중 한명이었던 토마스 불린의 딸이자, 노퍽 공작의 외손녀였기에 국왕이 이 결혼식에 참석할만 했었습니다. 물론 헨리 8세가 이미 메리 불린과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 결혼이 국왕의 명으로 이뤄진것이기에 국왕이 직접 참석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윌리엄 캐리


확실한 점은 헨리 8세가 메리 불린이 잉글랜드에 있었던 무렵인 1520년대 초 그녀에게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커보이며, 벳시 블런트와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는 1522년 경에는 메리 불린이 헨리 8세의 정부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리 불린이 국왕의 정부로 알려진 시점에 메리 불린의 막강한 경쟁자가 잉글랜드로 옵니다. 바로 메리의 여동생인 앤 불린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