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5)
'아이가 몇명이나 있소?.... 불쌍한것들, 곧 고아가 될텐데 참 안됐구료!'
-판갈로스 장군이 안드레아스 왕자를 심문하면서 한말
1차 세계대전은 많은 유럽의 왕족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전쟁이 끝난후 앨리스는 대부분의 친척들의 삶이 변화한것을 알게 될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시작은 앨리스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리스의 국왕인 콘스탄티노스1세는 1차대전때 그리스가 중립국으로 남길 원했다. 그는 자신의 국민들을 전쟁의 고통에 빠뜨리지 않길 원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리스의 권력자였던 베니젤로스는 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힘으로 독립했으며 유지되었던 그리스가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것이며, 적어도 이 전쟁에 참전해서 승전국으로 터키에 대한 다른 보상을 받길 원했다. 나라는 왕당파와 베니젤로스파로 갈렸으며, 연합국 역시 그리스에 압력을 가했다. 결국 콘스탄티노스1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둘째아들인 알렉산드로스에게 양위한후 가족과 함께 그리스를 떠났다. 안드레아스 왕자는 남아있어도 되리라 기대했지만, 정부는 새 국왕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왕족들이 떠나길 요구했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
그리스 왕가 사람들은 주로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안드레아와 앨리스 그리고 네 딸들은 스위스와 프랑스 그리고 영국등에서 지냈다. 안드레아는 이 상황에 무척이나 좌절했으며,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이 없다는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후 점점 술을 많이 마셨다.
하지만 앨리스와 그 가족들은 우울함에 빠져있을 여력이 없었다. 앨리스는 러시아 황실 가족들과 매우 가까운 친척사이였다. 황후는 이모였고, 다른 이모 역시 대공비로 황제의 숙모였다. 시어머니는 러시아 여대공이었으며, 동서도 역시 러시아 여대공이었고 시누이들도 러시아 대공비였다. 이런 러시아 황실과의 관계는 황족들이 살해당한 소식을 접했을때 너무나 끔찍함을 느끼게 했다. 앨리스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러시아의 여동생들이 죽었다는것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녀는 동생들 일을 잊기 위해서 매일 고된 정원일을 몇시간씩 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시어머니인 올가 왕비는 사위나 조카들의 소식을 몰라 두려워했으며 황제 가족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차마 조카들이야기를 듣는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막내 이모 가족들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
앨리스의 첫째 이모 엘라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표도로브나 대공비
러시아 가족들의 상황보다 다른 가족들의 상황이 훨씬 낫긴했다. 적어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앨리스의 아버지인 루이스는 자랑으로 여기던 해군에서의 생활에서 강제로 물러나야했다. 모두들 그를 독일의 스파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와이트섬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리고 국왕의 강요로 가족의 왕족 지위를 버리고 모두들 영국 귀족이 되었다. 앨리스의 동생 둘은 영국 해군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으며, 앨리스의 이모부와 독일 사촌은 독일 해군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다. 독일이 패한후에는 앨리스의 독일 이모인 이레네와 그녀의 남편 하인리히 왕자는 간신히 네덜란드로 망명했으며, 외삼촌인 헤센 대공 역시 대공령이 공화국이 되었고 그도 잠시 목숨이 위험하기도 했다.
앨리스의 외삼촌
헤센의 대공 에른스트 루드비히
전쟁이 끝난후 친척들의 문제가 어느정도 안정된 후에도 그리스 왕실은 여전히 망명중이었고, 안드레아나 앨리스도 점점 망명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들은 돌아갈 기회가 없는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어느날 갑자기 생겼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1세는 젊은 국왕이었고, 그가 죽으려면 오래 걸릴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운명의 시간은 멀지 않았다. 국왕은 애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었고 원숭이 한마리가 나타났다. 개와 원숭이는 견원지간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싸워댔으며, 국왕은 이를 말리려했다. 하지만 다른 원숭이 한마리가 나타나 국왕의 배를 할켰다. 그리고 얼마후 이 상처는 봉와직염으로 발전했고 국왕은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젊은 국왕의 죽음은 베니젤로스에게 큰 타격이었다. 그는 콘스탄티노스1세나 그의 맏아들인 게오르기오스가 국왕이 되는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울로스 왕자는 아버지와 형 대신 국왕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베니젤로스는 총선에서 패배했다. 결국 콘스탄티노스1세의 복위가 결정되었고 국왕과 그 가족은 다시 그리스로 돌아갔다. 앨리스와 안드레아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리스는 베니젤로스가 시작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소아시아지방을 침공한것이었다. 이것은 베니젤로스의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정교회를 믿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을 그리스 왕국이 통치하는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소아시아 침공은 무모한것이었고, 돌아온 왕실 가족들은 군대내에서 힘이 없었다.
콘스탄티노스 역시 이 침공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수행해야했다. 안드레아 역시 장군으로 전선에 나갔지만, 그는 이 침공을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결국 안드레아는 자신이 느끼기에 무모한 공격이라고 생각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총 사령관에게 항명했고 얼마간의 문제가 발생한후 후방으로 갈수 있었다.
필립 드 라즐로가 그린 안드레아스 왕자
소아시아 침공은 실패했으며, 엄청난 난민이 발생했다. 국왕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으며, 안드레아는 형에게 게오르기오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국왕은 최선을 다해서 국민들을 달래려했지만 결국 아들인 게오르기오스에게 양위한후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안드레아와 앨리스는 코르푸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떠나지 않고 정치에 관여도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자신들을 내버려둘것이라 여겼다. 둘은 이미 경험한 망명생활을 끔찍하게 여겼고, 다시 그리스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잘 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아시아 패전의 책임을 물을 책임자를 찾고 있었다. 많은 정부 관료들과 군인들이 체포되었고 안드레아 역시 체포되어 아테네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 추방이나 징역형을 받을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예상은 빗나갔다.
새로 수상이된 판갈로스 장군은 고위관료 여덞명을 재판 즉시 처형했다. 이는 모두에게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안드레아 역시 처형될 위기에 놓여있었기에, 영국 정부는 서둘러 베니젤로스와 접촉했고, 베니젤로스는 친분이 있는 영국 첩보원을 보냈다. 그는 안드레아를 무사히 구했으며, 앨리스와 가족들은 남편과 함께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그리스를 빠져나와야했다.
이렇게 앨리스는 또 망명생활을 시작했고, 이번 망명생활은 앨리스의 가족을 영원히 흩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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