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하하..대상포진을 핑계로 놀았더니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0-;;;
물론 그전에도 놀았지만 이제 대놓고 노는 분위기 -0-;;;;;;
쉬어야한다고 해서 쉬는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만....요즘 다시 밤에 잠을 안자고 딴짓 중이라..ㅠ.ㅠ
정신차려보면 중국어 읽는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ㅠ.ㅠ
(...차라리 스웨덴어를 하면...스웨덴 연애소설을 읽어볼까..=0='')
앨리스 :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2) : 어린시절
"그 아이는 앨리스라고 불릴꺼다."
-빅토리아 여왕이 아들 코넛공작 아서에게 보낸 편지에서
헤센의 빅토리아는 외할머니의 뜻에 따라 첫번째 아이를 친정과 시댁이 있는 다름슈타트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났던 윈저성에서 낳기로 했다. 그리고 1884년 2월 19일 빅토리아는 딸을 낳았다. 이 젊은 빅토리아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은 외손녀가 무사히 아이를 낳은것에 기뻐했으며, 많은 친척들과 지인들이 여왕의 새로운 증손녀의 탄생을 기뻐했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의 궁전이 있는 다름슈타트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빅토리아 앨리스 엘리자베스 줄리 마리"라는 이름으로 결정되었고, 보통은 앨리스라고 불리게 될것이었다.
새로 태어난 증손녀와 함께 있는 빅토리아 여왕
여왕,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공주, 여왕의 외손녀인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공비와 그녀의 딸 앨리스
앨리스는 매우 예쁜아이였으며, 여왕과 아이의 어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 둘 다를 만족 시키는 건강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남편의 지위에 따라 바텐베르크 공비라고 불렸던 아이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자신의 어머니 앨리스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그랬던것 처럼, 여왕에게 딸의 성장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정도 자랄때까지 어느 누구도 아이의 장애를 알아채지 못했다.
앨리스가 세살이 되었을때, 여왕은 외손녀에게 다시 아이를 낳으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889년 앨리스는 여왕의 표현대로 "같이 놀 여동생"을 얻게 되었다. 앨리스의 여동생인 루이즈는 조산으로 태어났으며, 이 때문에 매우 연약하고 자주 울어대는 신경질적인 아기였다. 더군다나 이 아이는 빅토리아 여왕과 어머니 빅토리아를 닮아서 그다지 예쁘지 않았으며 예쁜 언니와 자주 비교 당했기에 매우 소심한 아이로 성장한다. 그 후 남동생들인 조지와 루이스가 태어났다.
몰타에서 부모와 동생 루이즈와 함께
...앨리스는 저 얼굴 그대로 컸습니다.
앨리스의 청력장애는 가족 누구도 예상치 못한것이었다. 아이가 네살이 될때까지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으며, 남편을 따라 몰타로 간 며느리를 대신해 손녀들을 돌봤던 바텐베르크 공비가 아이를 의사에게 데려가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앨리스의 장애는 선천적인것이었지만,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는것은 아니었고 성인이 된후에 아주 큰 소리는 가끔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청력 장애에 대해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무척이나 걱정했는데 빅토리아는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장애를 가진 딸을 스스로 교육시켰으며, 장애를 가졌다고 특별 취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교육 덕택으로 앨리스는 입술읽는 것으로 영어,독일어,프랑스어를 했으며, 결혼후에는 그리스어까지 했으며 말도 매우 명확하게 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앨리스가 청력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앨리스를 여덟살때 만났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황후(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는 앨리스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그애가 청력 장애자라고 말할수 없을거란다. 단지 대답이 좀 느릴뿐 그게 다란다."라고 편지를 쓸 정도였다.
1885년의 앨리스
앨리스는 점점 자라면서 매우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후에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웨일즈 공은 앨리스에 대해서 "(유럽의 어떤)왕위계승자에게도 아깝지 않다."라고 언급할정도였고, 앨리스의 동생 루이즈는 예쁜 언니가 언젠가는 왕비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쁜고 얌전한 아이를 좋아하던 빅토리아 여왕은 앨리스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으며, 요크 공작 조지와 테크의 메이 공녀의 결혼식 들러리로 손녀인 알바니의 앨리스가 아니라 이 증손녀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를 세우라고 하고 결혼식장의 앨리스에 대해 "매우 예뻤다."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앨리스 역시 부모를 따라 다름슈타트,영국,몰타 등지를 떠돌면서 생활했고, 앨리스의 부모는 수입이 많지 않았기에 아이들 모두는 어머니 빅토리아가 얼마 안되는 고용인들과 함께 직접 보살폈고 이때문에 바텐베르크 가문의 아이들과 고용인들은 매우 특별한 애정관계를 형성해서 평생동안 서로를 돌보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층의 육아는 부모가 직접 참여하는것보다는 보모와 가정교사들이 주로 맡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왕족들 기준으로 볼때 매우 초라한 삶을 살았지만, 아이들은 궁정에서 멀리 떨어진 평온한 삶을 좋아했다. 그들에게 찾아오는 왕족 친척들 역시 이런 평온한 삶을 좋아했다. 앨리스의 막내 이모가 막 약혼했을때 그녀는 약혼자와 함께 언니의 집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미래의 이모부에 대해서 무척이나 기대했지만, 정작 막내 이모의 약혼자는 늙은 시종 한명만 데리고 왔고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는것을 무척이나 즐겼다.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후에 빅토리아 여왕이 왕실 마차를 보낸것을 보고 주변 이웃들은 깜짝 놀랐다. 여왕은 외손녀인 헤센의 알릭스와 그녀의 약혼자인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성으로 초대하기 위해 마차를 보낸것이었다.
앨리스의 막내 이모와 이모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이런 평온한 삶은 어머니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의 보호아래 이루어진것이었다. 여왕은 사랑하는 외손녀와 그 가족을 위해 자주 금전적 도움을 줬으며, 외손녀의 남편의 지위에도 도움을 주었다. 루이스가 함장이 되려했을때 청문회에서 한 하원의원은 "왕족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승진시키는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을 했을 정도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은 많은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들의 삶을 바꾸었다. 여기에는 앨리스도 들어갔다. 여왕의 죽음은 앨리스의 어린시절이 끝나는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이제 곧 멋진 왕자님을 만나게 될것이었다.
자료출처
1편과 동일
그림출처
첫번째 두번째 그림 : Alice :Princess Andrew of Greece (2000,Hugo Vickers) 에서 스캔
세번째 네번째 그림 :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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