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필립 공의 모친인 앨리스 왕자비에 대한 전기가 2000년대 초 휴고 비커스가 쓴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번역 다한 책이 그 책 되겠습니다.
물론 저의 스타는 루이즈 왕비이지만, 앨리스의 전기를 읽고 앨리스의 삶에 대해서 정말 감명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앨리스에 대한 글을 적었었습니다.
...한동안 문제가 있어서 앨리스에 대해서 쓴글 전체를 삭제한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글은 블로그에도 없는데 -0-(열받아서 블로그에서 삭제..ㅠ.ㅠ) 하여튼 아프니까 글읽기 싫어서 그냥 어디선가 가져왔습니다.
앨리스: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1) 부모
"그 기념할만한 날 이후 내 생의 모든 행복은 시작되었단다."
-1대 밀포드헤이번후작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전 바텐베르크의 루드비히공)이 아이들에게 남긴 회고록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딸 앨리스가 죽은뒤 앨리스의 가족에 대해 관여해왔다. 여왕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랬던것처럼 헤센 대공가의 가족들에 대한 정기적 보고서를 읽고 지시했다. 그리고 셋째딸인 헬레나에게 정기적으로 독일로 가서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 때문에 헤센 대공가의 아이들은 외할머니로부터 "어머니와 같이"자상한 보살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왕은 영국에 있었고, 독일에 있던 가족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해야했던것은 헤센대공가의 장녀인 빅토리아였다. 헤센의 빅토리아는 어머니가 죽었을때 겨우 열다섯살이었지만, 곧 궁정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아버지를 보좌했고, 동생들을 돌봤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인 앨리스에게 여러가지 이야기 하듯이 외손녀인 빅토리아에게도 같은 일을 했고, 빅토리아 역시 외할머니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할머니의 여러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과 헤센의 빅토리아는 좀더 모녀같은 사이가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헤센 대공가문 사람들
여왕의 딸인 앨리스가 죽은 뒤
헤센의 빅토리아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동생들과는 달리 그다지 아름답다고는 평가되지 않았다. 그녀는 외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을 많이 닮았다. 하지만 어린시절부터 무척이나 똑똑했다. 빅토리아의 어머니인 앨리스 대공비는 딸이 천재라고 여겼고 교육에 엄청난 열정을 쏟았다고 전해진다. 어린시절부터 가족내에서 어머니 역할을 해야했던 빅토리아는 무척이나 강한 성격으로 성장했고, 이후 엄청난 삶의 고난을 만나더라도 절대 절망하지않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헤센의 빅토리아
헤센의 빅토리아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친척인 바텐베르크가문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빅토리아의 가족들은 아버지의 숙부인 헤센의 알렉산더 공 가족과 아버지의 고모인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의 가족과 가깝게 지냈다.
젊은 시절 헤센의 알렉산더 공은 여동생이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되자 러시아로 가서 군대 경력을 쌓았다. 니콜라이1세는 그의 재능을 알아차렸고, 흥미를 가졌다. 하지만 이런 모든것은 그가 여동생의 시녀와 도망가면서 끝나게 된다.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시녀였던 율리아 폰 후케는 독일 출신의 모리츠 폰 후케 장군의 딸이었다. 모리츠 폰 후케 장군은 독일 출신의 평민이었지만, 나폴레옹 전쟁때 나폴레옹의 반대편에서 승진을 거듭했고, 러시아에서 출세해서 백작지위에 이르렀다. 그는 니콜라이1세의 형 콘스탄틴 대공이 폴란드를 통치하고 있던 시절 폴란드에 있었다. 폴란드에서 반란이 일어났을때 모리츠 폰 후케 장군은 러시아에 충성을 유지한 몇안되는 장군중 하나였고, 그때 사망한다. 반란이 진압된후 니콜라이1세는 그의 공을 인정해서 아들을 군에 입대하게 하고, 딸인 율리아 폰 후케를 평민출신임에도 며느리의 시녀로 궁정출입을 허락한다. 잘생긴 알렉산더 공과 아름답고 똑똑했으며 "야심이 컸다"라고 알려졌던 율리아 폰 후케는 폴란드에서 결혼했고, 니콜라이1세는 귀천상혼한 알렉산더를 러시아 궁정에서 추방한다. 알렉산더와 율리아는 헤센으로 돌아갔고, 알렉산더의 형은 율리아 폰 후케에게 "바텐베르크 백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준다. 그리고 후에는 "바텐베르크 공비"가되었다.
헤센의 알렉산더와 바텐베르크 공비
바텐베르크 공비의 아들중 장남인 루드비히는 친척인 앨리스 공주의 도움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궁정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영국 해군에 감명받았고, 빅토리아 여왕과 여왕의 "해군"아들인 앨프러드 왕자에게 외국왕족도 영국 해군이 될수있냐고 물었고, 여왕과 앨프러드는 15살의 그를 해군사관으로 받아들인다. 여왕은 루드비히에게 신경을 썼고, 특별히 웨일즈공부부의 항해에 그를 배속시켰다. 하지만 15살의 왕족에게 해군 하급 사관 생활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루드비히는 자신이 너무 배운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다른 하급 사관들의 거친 언행은 "곱게자란왕족"인 루드비히에게 큰 충격이었다. 웨일즈 공은 그를 격려했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역시 그를 자랑스러워했기에 그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다.
영국에서 루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린 그는 곧 스스로 뛰어난 해군임을 입증했다. 또 웨일즈공과 앨프러드 왕자의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되었고, 웨일즈공의 개인 부관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비록 부관자리를 거절하긴했지만 총각시절 그는 웨일즈공의 저택인 말보러 하우스에 방을 가지고 있었다.
바텐베르크의 루이스
그는 곧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연인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웨일즈공의 두 아들인 에디와 조지의 여행에도 동행했고. 어린시절 비슷한 고생을 했던 왕족으로 두 왕자의 멘토가 되었다. 두 왕자와의 우정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다. 웨일즈공은 자신의 아름다운 정부인 릴리 랭트리를 루이스에게 소개시켜주었고, 릴리 랭트리는 곧 임신하게 된다. 릴리 랭트리가 임신하고 나서 그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것처럼) 그녀와의 결혼을 생각한다. 하지만 알렉산더공과 바텐베르크 공비 그리고 릴리 랭트리의 남편은 이 생각에 반대했다. (웨일즈공의 정부들은 모두 유부녀였다. 아마도 그래야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을것이기 때문이었을것이다. 하지만 이때문에 웨일즈공은 이혼소송에 증인으로 나선경우도있었다.)
릴리 랭트리와의 문제는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알려졌고, 딸 베아트리스의 남편감으로 루이스를 고려중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해군 장관에게 그를 국외로 보내버리고 당분간 절대 영국에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와 릴리 랭트리는 헤어졌고, 1881년 딸 마리 랭트리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잰마리 랭트리는 마운트배튼가에 의해 교육비를 지원받았다고 한다.그리고후에 마운트배튼경은 잰 마리 랭트리가 아버지 루이스의 사생아라고 인정했다.)
릴리 랭트리
릴리 랭트리와의관계가 끝난후 영국으로 돌아온 루이스는 잠시 동생과 함께 성지 순례를 간다. 그리고 고향인 다름슈타트로 돌아왔을때 그는 다른이와의 사랑으로 릴리 랭트리를 잊는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이는 바로 오촌인 헤센의 빅토리아였다.
1883년 봄 빅토리아여왕은 외손녀들을 발모랄로 초대했다. 하지만 빅토리아는 가는것을 망설였고, 빅토리아의 동생인 엘라는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니가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는다면 루이스 바텐베르크와 약혼하게 될꺼예요."
루이스 역시 같은 이유로 사촌인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에 초대받았지만,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해 여름 루이스는 빅토리아에게 '자신과 결혼해줄수있냐고 물었고, 그날이후 그의 삶의 행복은 시작되었다.'
둘의 결혼은 처음에 빅토리아여왕의 반대에 부딪힌다. 여왕은 빅토리아가 어린 동생들을 계속 독일에서 돌보길 바랬는데,루이스와 결혼한다면 영국에서 살아야하기때문이었다. 또 여왕은 릴리 랭트리와의 스캔들 역시 잊지 않고있었을것이었다. 빅토리아는 루이스가 해군으로 바다에 나가있는동안 독일에서 지내면서 가족들을 돌보면 된다고 외할머니를 설득했고, 여왕은 외손녀의 행복을 위해 결심을 바꾸었다. (사실 여왕은 잘생긴 바텐베르크가 남자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약혼기간은 무려 1년이나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한 둘의 결혼식은 여왕의 진노로 망쳐질뻔했다. 여왕은 딸 베아트리스를 데리고 헤센으로 갔다. 그곳에서 여왕은 가장 좋아한 사위가 자신에게 말도 없이 러시아 이혼녀와 귀천상혼한것을 알았다. 여왕은 진노했고 사위에게 당장 헤어지라고 강요했다. 게다가 외손녀인 엘라가 러시아의 세르게이 대공과 약혼했다는 소식역시 여왕의 기분을 좋지 않게 했다. 여왕의 진노때문에 빅토리아는 결혼식을 망칠까봐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이모이자 친구같았던 베아트리스가 간신히 달랬다. 결국 루드비히 대공은 결혼을 무효화해서 장모인 빅토리아 여왕을 기쁘게 했다. 신부인 빅토리아는 스트레스때문에 굶다가 폭식을 해서 급체로 앓아누웠다. 그리고 이 결혼식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궁정을 잠시 얼음궁전으로 만들었고 후에는 즐거운 궁정으로 바꾸는 사건의 발단이 일어난다. 신부의 이모인 베아트리스가 신랑의 동생인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를 만난것이었다.
루이스와 빅토리아
빅토리아와 루이스는 결혼해서 영국과 독일 몰타등을 떠돌면서 살았다. 루이스는 해군이었기에 기본적으로 이곳저곳 옮겨다녀야했고, 빅토리아는 독일의 가족들을 돌봐야했다. 또 영국에 있을때면, 빅토리아는 늘 외할머니인 여왕이 부를때마다 가야했기에 여왕의 근처에서 살아야했다. 또 루이스는 일년에 육개월이상 바다에 나가있었다. 하지만 둘은 이런 삶에 불평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빅토리아가 가족을 돌봐야하는것을 이해했고, 빅토리아는 루이스가 늘 자기곁에 있을수 없는것을 이해했다.
둘의 성격은 매우 달랐다. 루이스와 빅토리아의 아들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후에 자신과 누나 루이즈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어머니 빅토리아를 닮았고, 반면 형조지와 누나 앨리스는 과묵하지만 언제나 생각이 깊었던 아버지 루이스를 닮았다"라고 이야기했다.루이스는 과묵했지만, 격식을 차리고 군복을 입고 훈장을 다는것으로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것을 좋아했다. 반면 빅토리아는 끊임없이 수다스러웠지만, 격식을 차리기 보다는 직접적이고 단순명료하게 이야기했다.
자료출처
1.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000,Hugo Vickers)
2.The Last Princess: the devoted life of Queen Victoria's Youngest Daughter (2008, Matthew Dennison)
3.Alexander III : the last great tsar (2005,Edvard Radzinsky)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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