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하..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앨리스 왕자비책을끝냈습니다. 그래서 아래도 글을 썼었는데 한번 더씁니다.
그때는 아직 읽는중인지라 감동을 덜 느꼈었는데...끝내고 나니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는군요..아하하하.
(사실 영어책한권을 완벽하게 끝냈다는데 더 감동이..=-=).
앨리스 왕자비는 지금 살아있는 필립공의 어머니이자 영국 왕실가족들의 할머니,증조할머니가 되시는분이시죠. 사실 필립공의 어머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가 관심없는 최근분^^*으로 생각하기 쉬웠답니다.
하지만 앨리스 왕자비가 태어난것은 무려 빅토리아 여왕시대!! 그것도 여왕님이 특별히 태어날때 옆에 계셨다고 하는사실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또 러시아의 마지막 황후인 알렉산드라의 조카로 알렉산드라와 그 딸들이 결혼식에도 왔다라는것은 정말로 옛날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하죠.
책을 읽으면서 사진으로만 알던 옛날사람들과 요즘 텔레비전에서 볼수있는 사람들을 연결할수있는 연결고리라고 할까요...그런생각이 들었답니다.
휴고비커스의 책을 읽으면서 앨리스의 삶에 너무나도 경탄하게 되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아마 휴고 비커스 역시 그녀의 삶에 매료되었던것같다죠. 독자인 제가 그런 느낌을 전해받은것을 보면 말입니다.
앨리스: 그리스의안드레아스 왕자비
휴고비커스는 책머리에서 앨리스의 삶이 '기묘한 대비'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그녀의 일생은 그랬죠. 증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바랬기에 윈저성에서 태어났고 후에 아들이 살던 윈저성에 오래도록 묻혀있었죠. 누구나 경탄할만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었지에 언제나 가족들안에서 약간 멀리 외따로 떨어져있었습니다. 또 사랑에빠져 결혼했지만, 결국 남편과 헤어져 살게되죠. 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진정한 노블리스오브제를 보여주는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이 사랑하는 증손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손녀인 알바니의 앨리스보다 이 증손녀를 더 아꼈던 모습을 보여주시죠. 게다가 앨리스의 어머니는 여왕이 늘 가장 사랑하던 외손녀였습니다. 또 앨리스의 아버지 역시 여왕이 좋아하던 손주사위였죠. 그리고 에드워드7세의 가장 신임받는 신하중 한명이었구요. 이런 화려하고 왕가의 가족으로 살던 앨리스는 18살도 안되어서 사랑에 빠집니다. 후에 손녀인 앤공주에게 '그리스의 신같았다'라고 표현했던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였죠. 앨리스가 결혼할당시에는 사랑으로 결혼하는 왕족들이 드물었던 시대에 사랑으로 결혼한것이죠.
2살때의 앨리스
하지만 정치적으로 늘 불안했던 그리스의 왕자와 결혼하면서 앨리스의 삶은 조금씩 힘들어집니다. 왕궁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그녀는 1차대전 이전에 이미 전쟁에 대해서 목격하죠. 발칸전쟁이 일어나자 스스로 전선을 돌아다니면서 야전병원을 운영하고, 환자들을 돌봤죠.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끔찍한 시신들이 널려있는 지역을 지나다니기도 하고, 끔직한 수술실에 들어가서 환자를 돌보기도 했죠. 앨리스는 그 상황을 '너무나도 끔찍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어머니의 시녀이자 가족의 친구였던 노나가 도와주러오겠다고 하자 '너무위험하기에오지말라'라고 스스로 말할정도였죠. 하지만 그녀 자신은 남편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전선에 남았죠.
그리스의 불안한 정치상황은 1차대전때 왕족들전체를 스위스로 망명하게 만들었고, 앨리스는 조국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얻지못했죠. 하지만 그 전쟁은 앨리스의 상황을 모두 바꾸어버립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왕족지위를 포기했고, 외삼촌은 퇴위를 강요당했죠. 이모한명은 망명해야했고, 러시아황실가족이었던 이모 두명은 혁명중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망명생활중이었죠.
그리스왕가는 1920년 다시 복귀합니다만 소아시아침공의 실패로 결국 다시 망명길에 올라야했고,앨리스는 코르푸섬에 갇혀있었고, 안드레아는 군사재판으로 거의 총살당할뻔했죠. 조지5세의 노력과 베니젤로스의 허락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해 프랑스로 망명할수있었습니다.
군사법정에서의 안드레아스 왕자
돌아갈날을 기약하지 못하는 망명생활은 앨리스의 가족들에게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앨리스의 아이중 막내였던 필립은 아직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앨리스의 네 딸들은 늘 그리스를 그리워했죠. 또 안드레아는 어린시절부터 그리스 군인으로 성장했고, 조국에 봉사하는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망명생활동안 괴로워하면서 술을 점점 많이 마시기 시작했죠. 왕족으로서 조국에서 일하는것이 자신의 의무라는것을 잘알았던 앨리스 역시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종교에 집착하게되죠.
앨리스는 결국 종교적 환영을 보기에 이르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그녀의 병이 편집증과 비슷한 상태라고 진단했다고 합니다. 앨리스의 가족들은 사회적 지위때문에 앨리스를 요양원에 가두기로 결정합니다. 1930년부터 이년반동안 앨리스는 스위스의 요양원에 있었습니다. 이동안 앨리스의 가정은 사라져버렸죠. 어머니가 병원에 있는동안 네딸들은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겨우 16살이었던 막내 소피아까지도말입니다. 그리고 안드레아는 아들 필립을 장모인 빅토리아에게 맡기고는 그냥 화려한 사교계 생활에서 무의미하게 살아가는것을 택하죠. 안드레아가 아픈 아내와 어린 아들을 돌보지 않은 것은 잘못이긴 하지만, 왠지 그게 그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것이 아니라, 자기자신도 주체하지 못할정도로 힘이 든 상태에서 부인마저 아프니까 그냥 손을 놔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가장 사랑했던 딸 세실이 죽기전까지는 그래도 딸들과도 자주 함께 있고 그랬지만, 가장 사랑했던 딸마저 비극적으로 죽자 아이들과의 교류도 끊어버리죠. 스스로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고통과 아픔에 좌절한 모습이라 안타까움이 가장 컸답니다.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던것이죠.
앨리스는 스스로의 의지로 정신병에서 조금씩 회복합니다.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가던 무렵 앨리스의 딸인 세실가족이 모두 죽는 비행기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후 앨리스에게 딸을 잃은 슬픔이 가족들에 대한 관심을 되돌리게 만들어서 점점 정상적 삶으로 되돌아가죠.
병에서 회복한후 앨리스는 그리스로 돌아갑니다. 이유는 그리스 왕족으로 살아가야할 아들 필립을 위해서였죠. 앨리스는 필립이 당연히 그리스로 돌아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왕족으로 그리스에서 봉사하는것이 당연한 의무였기때문이었죠. 그리고 스스로도 그리스에서 다른 왕족들처럼 자선단체를 운영합니다.
2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리스 왕족들은 국왕의 늙은 숙모를 제외하고는 모두 망명합니다. 앨리스와 동서인 니콜라오스왕자비만이 그리스에 남았죠. 독일점령첫해, 그리스는 기아상태에 빠졌고, 아테네와 그 인근에서만 매일 천여명이 아사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앨리스는 중립국이었던 스웨덴 적십자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구호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우선이었기에 어른들은 대부분 굶주렸고, 식량을 구할수 있었던 앨리스 역시 다른이들처럼 같이 굶주렸다고 합니다.(앨리스의 동생인 루이즈는 스웨덴의 왕태자비였고 딸들은 모두 독일인과 결혼했었습니다) 그해겨울동안 앨리스는 21kg이나 살이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자녀들이나 친척들에게 자신은 건강하고 신경쓸필요없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이런 혹독한 시련은 한동안 자신의 또다른 고향이었던 독일에 대해서 증오심과 적개심을 가지게 했다고 합니다.
독일 점령이 끝나자마자 그리스에서는 내전이 시작됩니다. 내전은 아테네에서 시가전 양상으로 진행되었는데 앨리스는 총알이 날라다니는 거리로 나가 다른이들에게 자신이 가진것들을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안전을 걱정한 영국군 장교에게 앨리스는 '난 청각장애인이라 총쏘는 소릴 듣지 못해 죽는걸 알수없을텐데 무슨걱정이오? 그것이 내 의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전쟁이후 앨리스의 아들인 필립이 영국의 왕위계승자인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지만 앨리스는 그리스에서 살아갑니다. 여전히 자선사업을 했고, 수녀회를 운영하려고도 했지만 그것은 잘 안되었죠. 하지만 자주 가족들을 만나러 영국과 스위스독일을 방문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2차대전때의 원한은 잊혀져갔고, 독일에 있는 가족들과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 사이좋게 지내길 바라게 되죠. 친척들과 친구들이 죽으면서 점점 외로움을 느끼던 앨리스는 그리스의 정세가 다시 위험해지자 결국 여왕의 초청을 받아들여 영국으로 갑니다. 쿠데타로 그리스 정세가 혼란했고, 앨리스의 딸인 소피아는 어머니에게 가서 여왕이 버킹엄궁으로 초대했다고 하자 '릴리벳이 그러더냐?'라면서 눈을 반짝였다고 합니다. (릴리벳은 여왕님 애칭이십니다. 현재 여왕님은 저렇게 부를분은 영국에서는 남편인 필립공과 사촌인 켄트의 알렉산드라 공주뿐이시라고...)
늘 영국에서는 왕실 공식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조용히 살았던 앨리스는 버킹엄 궁에서 조용히 사망했습니다. 그녀는 자던중 평화롭게 죽었고, 앤공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드라즐로의 초상화 같았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드 라즐로가 그린 1920년대의 앨리스
필립공 소장
앨리스는 죽기전 구두로 이모가 묻힌 예루살렘에 묻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모인 엘라대공비는 이스라엘에 있는 성 마리아 마그달레나 교회에 묻혀있었죠. 이 일은 그녀가 죽은지 거의 20년 후인 1988년에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2년 앨리스는 2차대전동안 한 유대인가족들을 숨겨준 일로 '열방의 의인'상이 추증되었다고합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앨리스의 가족들은 거의 몰랐고, 도움을 받은 유대인 가족들을 통해서 정확히 알게되었다고합니다. 이일이 있은후 막내딸인 소피아는 어머니의 전기가 나와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문에 휴고비커스의 책이 나올수있게되었다고합니다.
휴고비커스의 책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 ... 어려운 시기를 보내지 않았다면, 앨리스는 그녀가 이뤘던것보다 더 많은것을 할수 있었을것이다. 그녀가 의지가 좀 덜 굳고, 덜 고집스러웠다면, 그녀의 인생은 아마도 평온했을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낙담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앨리스는 자신보다 불운한 모든 사람을 돕는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앨리스의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고, 좌절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섰으며 다른이들을 위해 노력했죠. 그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할수있는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죠.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만한 삶이 아니었을까합니다.
휴고비커스 책의 표지로 쓰인 드 라즐로의 그림
1910년대던가....하여튼 위의 그림보다 먼저 그려진 그림입니다.
(솔직히..무슨 20대 초반을 40대처럼 그리셨는지...--;;)
역시 필립공 소장
자료출처: 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2000,Hugo Vickers)
그림출처: 1.자료출처와 동일책
2. 두 그림은 위키피디어
3. 맨첫그림은....구글검색 어딘가에서..=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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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써놨던 글인데 열받았을때(..아시죠 제가 왜 열받는지..ㅎㅎㅎ) 비밀글로 돌렸던 글중 하나입니다.-0-;;;
다시 쓰는 이유는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하더라구요.
사실 제가 꽃보다 할배도 안보는데 (텔레비전을 거의 안보거든요.) 그리스 편이라고 해서 뭐랄까 제가 가고 싶은 곳들(...문제가 저는 그리스 근현대사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사람들 많이 가는 곳이랑 살짝 거리가 있는 곳들이 관심이 있긴하지만...뭐 아테네에 가면 제가 관심있는곳 중 한곳은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왕궁-현재는 뭐더라..-은 지나가지 않겠습니다. -0-;;;) 이 나올지도 몰라서 나중에 내용보고 볼까 싶거든요.
하여튼 그래서 뜬금없이 오랫만에 앨리스 왕자비 이야기가 떠올라서 다시 올립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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