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35) 에우도키아 표도로브나 로푸키나 : 표트르 대제의 부인(두번째)

엘아라 2017. 9.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갑작스럽게 가을이니 당황스럽군요 아하하...-0-;;;;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35) 에우도키아 표도로브나 로푸키나 : 표트르 대제의 부인(두번째)



에우도키아 표도로브나 로푸키나

Eudoxia Feodorovna Lopukhina 

(Евдоки́я Фёдоровна Лопухина)

(9 August [O.S. 30 July] 1669, Moscow – 7 September [O.S. 27 August] 1731, Moscow)




에우도키아는 표트르 대제와 결혼후 세명의 아들을 연이어 낳습니다. 이것은 딸밖에 없던 표트르의 형인 이반 5세에 비해 표트르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만 이 세아들중 장남이었던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만이 살아남아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황태자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비록 아들들을 낳았지만 에우도키아와 표트르의 결혼 생활은 매우 불행했는데 먼저 표트르는 에우도키아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습니다. 또 그는 곧 네덜란드 상인의 딸이었던 안나 몬스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점차 에우도키아를 더 멀리하게 되죠. 게다가 에우도키아는 전통적 러시아 여성으로 서구화를 추구하던 남편 표트르 대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표트르의 어머니였던 나탈리아가 1694년 사망하면서 표트르는 이제 에우도키아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안나 몬스가 표트르의 정부로 궁정의 중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1696년 표트르 대제는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서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때 표트르는 외가쪽 가족들에게 에우도키아에게 수녀원에 들어가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에우도키아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었습니다.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에서 돌아오는 1698년까지 에우도키아는 버티고 있었지만 결국 에우도키아는 수녀원으로 들어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우도키아가 들어간 수도원의 원장은 에우도키아에게 수녀로써의 삶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해줬었다고 합니다.결국 표트르는 에우도키아와 이혼했으며, 자신의 정부로 후에 예카테리나 1세가 되는 마르타 스카브론스카야와 정식으로 결혼하죠.


표트르의 황후 예카테리나 1세


에우도키아는 수녀원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녀의 아들인 알렉세이는 표트르의 아들로 황위계승자였습니다. 알렉세이는 아버지의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와 불화했으며, 어머니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이런 알렉세이에 대해 표트르는 화를 내면서 에우도키아와 알렉세이를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둘을 만나게 해주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화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에우도키아는 수도원에서 자유롭게 지냈으며 결국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에우도키아의 연인이었던 사람은 모스크바로 끌려가서 고문당한뒤 처형되었으며 에우도키아에 대해서 처형하거나 아니면 멀리 유배보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1718년 표트르는 자신의 정적이 된 아들 알렉세이를 비롯해서 알렉세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에 이릅니다. 여기에는 에우도키아의 친정 식구들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에우도키아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표트르 대제가 죽고 예카테리나 1세가 여제가 된 뒤에도 살아남습니다. 물론 엄중한 감시속에 놓여있었지만 말입니다.



표트르 대제와 아들 알렉세이


에우도키아는 그녀의 손자인 표트르 2세가 즉위할때 까지 살아있었습니다. 표트르 2세는 즉위한 뒤 할머니인 에우도키아를 모스크바로 불렀고, 에우도키아는 자유의 몸으로 살았으며 짜르의 할머니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1731년까지 자신만의 궁정을 꾸려서 살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