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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 ...(145) 엘리자베스 블런트 : 헨리 8세의 정부 (첫번째)

엘아라 2017. 6.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다 할려니 책을 다 읽어야해서..ㅠ.ㅠ

은근슬쩍 넘어갈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나중에라도 다 할까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 ...(145) 엘리자베스 블런트 : 헨리 8세의 정부 (첫번째)


엘리자베스 블런트

Elizabeth Blount 

(c. 1498[1]/c. 1500[2]/c. 1502[3] – 1539/1540),[3]


일반적으로 벳시 블런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엘리자베스 블런트는 1500년경 존 블런트 경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왕가에 매우 충성스러웠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블런트 가문은 원래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로 올때 함께 왔던 기사였던 로베르 르 블런트의 후손이었습니다. 특히 윌리엄 블런트는 헨리 8세의 어린시절 멘토로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벳시 블런트는 이런 윌리엄 블런트와 먼 일가 였을뿐이었으며 궁정내에서도 영향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많은 중세 여인들 처럼 엘리자베스 역시 많은 자료가 나와있지 않지만, 늘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했던 헨리 8세의 눈에 들어 그의 아들을 낳을 정도였으면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매우 아름다웠을 여성으로 추정이 됩니다. 엘리자베스 블런트는 헨리 8세의 아내였던 캐서린 왕비의 시녀로 일했는데 여기에는 아마도 윌리엄 블런트의 영향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윌리엄 블런트는 친척이었던 엘리자베스를 왕비의 시녀로 일할수있게 궁정에 자리를 얻어주려 했을 것이며, 헨리 8세는 이를 허락했을 것입니다.




윌리엄 블런트의 문장


엘리자베스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기에 노래를 잘 불렀으며 스스로 작곡까지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춤도 잘 췄었죠. 1513년 엘리자베스는 궁정에 왔으며, 헨리 8세는 곧 벳시에 대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역시 국왕에게 반해버리죠. 결국 1514년경 엘리자베스는 헨리 8세의 정부가 됩니다.


헨리 8세는 벳시 블런트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 했는데, 비록 그가 다른 여성들과 짧은 연애관계를 계속 이어갔지만, 벳시와의 관계는 오래도록 유지 되었다고 합니다. 헨리 8세는 그만큼 벳시 블런트와의 관계에 집중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519년 벳시 블런트는 헨리 8세의 아들인 헨리 피츠로이를 낳게 됩니다. 




헨리 피츠로이

헨리 8세와 벳시 블런트의 아들



아마도 벳시가 건강한 아들을 낳은 것을 본 헨리 8세는 아마도 건강한 후계자를 얻을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엘리자베스는 "국왕의 아들의 어머니"라고 알려졌으며, 곧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벳시의 아들인 헨리 피츠로이는 국왕의 아들로 인정되었지만, 적자가 아닌 서자로, 국왕의 적자인 딸 (메리 공주)가 후손없이 사망할 경우 상속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직후 벳시는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그는 킴의 테일보이스 남작으로 1520년 경에 결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헨리 8세와 벳시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난 뒤 헨리 8세는 메리 불린과의 연애를 시작했으며 이때문에 결국 벳시는 헨리 8세와 헤어지게 됩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