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105) 앤 불린 : 헨리 8세의 왕비 (네번째)

엘아라 2017. 3. 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음이 바쁘네요..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05) 앤 불린 : 헨리 8세의 왕비 (네번째)





앤 불린

Anne Boleyn 

(c. 1501 – 19 May 1536)



앤 불린은 국왕이 자신을 쫓아다니고 있었을때 아마 국왕의 다른 많은 여성들에 대해서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국왕의 아들을 낳았던 엘리자베스 블런트의 경우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부정한 여자라는 오명을 어쩔수는 없었죠. 언니인 메리 불린 역시 국왕의 정부였지만 결국 다른 여자가 나타나면서 그녀는 국왕에게 버림 받았었죠. 이런 국왕의 사랑을 그냥 받아들일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앤은 처음에는 왕비가 될 마음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다른 귀족 남자의 정식 아내가 되길 원한것이었지 국왕의 정부가 되길 바란것이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앤의 언니 

메리 불린



하지만 앤의 거절은 헨리 8세의 마음에 불을 지피게 됩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을 원했지만 그의 아내인 캐서린 왕비는 이미 폐경기가 지나서 더이상 아이를 가질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아내와 헤어져서 자신에게 건강한 아들을 낳아줄수 있는 여성과의 결혼을 점차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소문들이 많이 퍼져있었죠. 하지만 하나님앞에서 결혼한 아내와 헤어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법률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되자 헨리는 아내와의 이혼에 대한 도덕적 법률적 명분을 부여하려 했고 그 명분이 바로 "형수와 결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분을 들어 그는 아내와의 결혼을 무효로 돌리고 새로운 아내를 맞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문제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였으며 결정적으로 헨리의 아내였던 캐서린이 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캐서린은 첫남편과의 결혼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결혼은 무효였으며 그 뒤 헨리와 결혼한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것은 둘의 관점의 차이로 헤어지는 것을 원하는 헨리 8세는 "형수"라는 점을 주목했고,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캐서린은 "결혼이 완성되지 않았다"라는 점을 주목했었죠.




헨리8세와 캐서린 왕비


헨리 8세는 교황에게 결혼 무효를 주장했고 결혼 무효가 타당한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재판이 시작됩니다. 헨리는 캐서린과 헤어지는 것이 "형수와 결혼한 죄"속에 살았던 자신을 해방시켜줄 것이며 결국 건강한 후계자가 될 아들을 얻을 것이라 여겼었죠. 그리고 그 상대는 바로 자신이 매혹당했던 앤 불린이었습니다.


하지만 헨리 8세가 아내와 헤어지려면 외교적 문제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당시 교황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포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캐서린의 조카였죠. 황제 카를 5세는 이모가 잉글랜드 왕비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교황은 판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헨리에게는 판결이 날때까지 재혼을 금지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앤은 헨리가 아내와 헤어지겠다는 결심이 굳어지면서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짜피 국왕이 왕비와 헤어지고 새로운 아내를 맞을 것이라면 국왕을 매혹시킨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앤은 이제 헨리의 구혼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앤과 헨리


1531년 캐서린은 궁정에서 쫓겨났으며 감금당한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앤은 왕비의 방과 왕비가 누리던 모든것을 차지하게 되죠. 이것은 누가 봐도 이제 앤이 왕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앤은 궁정의 중심으로 국왕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외국의 대사들은앤이 국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잉글랜드 정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왕비는 여전히 캐서린이었으며 앤은 왕을 꼬신 나쁜 여자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531년 가을 템즈강인근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앤은 주변에 살던 여성들이 앤에게 공격적이었기에 간신히 몸을 피한적도 있었죠.


앤은 오래도록 헨리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앤은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을 것이며 이런 앤의 반응에 헨리가 더욱더 아내와의 이혼을 진행했다고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제 앤은 헨리와의 결혼이 거의 확정적이 되면서 아마도 헨리와의 잠자리를 허락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1532년 가을 앤은 헨리에게서 "펌브로크 여후작"지위를 받았으며 엄청난 재산과 영지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헨리가 이제 결혼할 앤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었을 것인데 자신이 갑자기 죽을 경우 앤의 지위가 몰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이때쯤 앤이 헨리에게 잠자리를 함께 했으며 이때문에 헨리가 이제 연인이 된 앤을 위해 이런 지위를 부여한것이라고 추정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앤이 궁정에 중심에 있으면서 앤의 가족들 역시 혜택을 누리게 됩니다. 앤의 아버지는 이제 백작 지위를 얻었으며 불린 가문의 세력은 노퍽 공작 가문이나 서퍽 공작 가문들을 압도하게 됩니다. 또 과부가 된 앤의 언니인 메리 불린은 연금을 받았으며 메리의 아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을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곧 앤이 국왕과 결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