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불린
Anne Boleyn
1535년 앤이 아들을 사산하게 되자, 헨리8세는 앤에 대한 인내심을 잃게 됩니다. 순종적이지 않은 아내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그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며 성난 민심과 아들을 낳지 못한 것등의 모든 책임을 앤에게 돌리게 됩니다. 물론 앤 역시 이에 대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종교개혁결과 가톨릭 교회의 재산은 모두 국왕에게 귀속되었으며 이때문에 헨리는 엄청나게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이 종교개혁의 불만에 대한 비난을 모두 자신에게 쏟아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부부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으며 헨리는 여전히 다른 여성들을 쫓아다녔고,이제 앤에 대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처벌도 훨씬 관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앤의 유일한 낙은 자신을 닮아 아름다웠던 딸 엘리자베스였죠.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예쁜아이였으며 "아버지 헨리"는 자식들에게 어느정도 너그러운 면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이런 딸만이 앤의 유일한 낙이 됩니다.
헨리 8세
1535년 9월 앤과 헨리를 비롯한 궁정은 월트셔로 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국왕 부부는 산림 감시원이었던 존 시모어 경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당시 존 시모어의 딸이었던 제인 시모어는 왕비의 시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은 매우 중요한데 아마도 헨리가 제인 시모어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 이때쯤부터 일것이라 추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존 시모어의 집에서 돌아온뒤 헨리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제인 시모어를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시모어 가문은 캐서린 왕비와 메리 공주에게 호의적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지지하므로써 국왕의 눈밖에 나는 일을 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이것은 제인도 마찬가지였었죠. 국왕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하자, 제인의 주변 사람들은 제인에게 앤처럼 행동하라고 충고합니다. 국왕이 그녀와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잠자리를 허락하지 말라는 것이었죠. 결국 헨리는 점차 앤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인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제인 시모어
앤에게는 다행히도 1535년 11월 다시한번 임신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다시한번 앤의 영향력은 회복되게 됩니다. 그리고 앤은 자신의 지위를 여전히 위협하고 있는 캐서린 왕비와 메리 공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둘이 독살당할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으며 아마도 독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아이의 지위를 위해서 앤이 뭔가를 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앤에게는 다행히도 캐서린의 힘든 삶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래도록 힘든 삶을 살았으며 건강은 점차 나빠졌었죠. 결국 1536년 1월 8일 캐서린은 힘든 삶을 마감합니다. 그녀의 죽음은 앤과 헨리에게 골치아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죠. 물론 둘의 골치아픈 문제가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앤의 이런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녀의 삶 역시 고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헨리 8세와 여인들(앨리슨 위어, 박미영, 루비박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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