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일곱개를 합니다..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08) 앤 불린 : 헨리 8세의 왕비(일곱번째)
앤 불린
Anne Boleyn
앤은 이제 아들을 무사히 낳는다면 자신의 지위가 안정적일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면 큰 문제가 생길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구요. 캐서린 왕비가 죽은뒤 어머니를 잃은 메리는 아프게 됩니다. 이때 앤은 메리에게 화해를 시도합니다. 어쨌든 메리는 헨리의 딸이었으며 앤은 그녀와 싸워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메리는 이런 화해 시도를 거절합니다.
메리
1544년
이 와중에 헨리8세는 1536년 1월 24일 마상시합에서 낙마해서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두시간동안이나 의식불명이었던 헨리 8세는 다시 깨어난뒤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앤에게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캐서린 왕비의 장례식이 있었던 1536년 1월 29일 앤은 사내아이를 유산하게 됩니다. 이때 앤은 남편인 헨리가 시녀인 제인 시모어를 자신의 무릎위에 앉히고 시시덕거리는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앤의 불같은 성미에 이런 상황을 보고 격분했었으며 이후 앤은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죠. 아이의 유산 책임에 대해서 헨리와 앤은 서로에게 화풀이를 했으며 결국 헨리는 앤에게 진절머리를 내게 됩니다.
앤이 또 아이를 유산하자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자꾸 유산되는 것이 누구 책임인지에 대해서 말이 많게 됩니다. 사실 앤이 자꾸 유산한 원인은 앤의 혈액형이 RH-형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이경우 첫번째아이는 무사히태어나지만 두번째아이부터는 항원이 형성이 되어서 아이의 혈액에 있는 RH+ 적혈구를 파괴하는 현상이 나타나기에 아이가 살아남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16세기에는 알지 못했으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앤이 캐서린을 내쫓고 결혼했기에 내리는 신의 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헨리 8세는 다시 한번 정치적 문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는 캐서린이 살아있었을때 캐서린의 조카인 황제와 사이가 나빴었죠. 하지만 캐서린이 죽은뒤 황제와 동맹관계에 장애물은 사라졌으며 누구보다도 동맹을 원하게 됩니다. 황제 역시 프랑스를 견제해야하는 입장에서 잉글랜드와의 동맹은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앤 불린이 살아서 왕비로 있는한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점차 정치적 상황은 앤이 이제 사라져야할 때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에스파냐 대사는 대놓고 제인 시모어가 왕비감이라고 떠들어댔으며,제인 시모어 역시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앞에 공식화 하길 바라게됩니다.
헨리는 앤과 헤어지길 원하게 되지만 앤과 헤어질만한 명분이 없었죠. 이 문제에 대해서 토마스 크롬웰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바로 왕비가 국왕 몰래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음모들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4월이 되어서는 앤도 서서히 이상한 기미를 눈치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음모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죠. 4월 말이 되면서 서서히 앤의 주변의 남자들이 하나둘씩 체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월 2일에는 앤이 체포당해서 런던탑에 갇히게 됩니다. 5월 10일 앤은 여러남자들과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죄로 기소되는데 여기에는 동생과의 근친상간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앤을 부정한 여자로 몰아서 처형을 하기 위해 온갖죄목이 다 동원되었던 것이죠.
5월 12일 앤의 죄상이 법정에서 나열됩니다. 이에 대해서 앤은 조목조목 반박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앤은 참수형이 확정되었는데 이 처형문을 낭독한 사람은 앤의 외삼촌이었던 노퍽 공작이었습니다. 그는 앤과 사이가 틀어지긴했지만 조카의 처형문을 낭독하는 것은 힘든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앤을 사모했었던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는 앤의 유죄 판결에 쓰러졌으며, 중병을 앓고 있었던 그는 몇달뒤 사망하죠. 앤은 판결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마 그녀는 헨리가 이런식으로 자신을 제거할것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예감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때문에 죄없이 죽게 된 사람들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런던탑에서의 앤
5월 14일 캔터베리 대주교는 헨리와 앤의 결혼을 무효로 선언했으며, 16일에는 앤에게 가서 이 무효 선언에 동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캔터베리 대주교는 앤에게 결혼무효선언에 동의하면 앤을 죽이지 않고 수녀원으로 보내 유폐시킬것이라는 언질을 줬던듯합니다. 그리고 5월 17일 앤과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여겨진 남자들의 참수형이 집행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앤은 참수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약간 지체되는데 사형집행인이 늦었기 때문이었죠. 5월 19일 앤은 참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앤이 체포된 직후 헨리는 제인 시모어를 불렀으며 5월 18일 호화로운 파티에 제인은 왕비처럼 차려입고 왕비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헨리는 앤이 처형될때까지 흥겨운 파티속에 빠져 살았죠.
헨리 8세
앤이 참수형 당한뒤 앤의 가족들은 몰락하게 됩니다. 앤의 딸인 엘리자베스는 부모의 결혼 무효로 인해서 "사생아"가 되었으며 앤의 부모는 몰락한 귀족으로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서 은거 생활을 합니다. 앤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워졌으며, 헨리 8세는 앤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입에 담지 못하게 금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낳아줄 여성과 결혼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헨리 8세와 여인들(앨리슨 위어, 박미영, 루비박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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