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글을 읽어야하는데 참 집중이 안되네요..ㅠ.ㅠ
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5)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 짜르 알렉세이의 딸(두번째)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Sophia Alekseyevna
(Со́фья Алексе́евна)
(27 September [17 September] 1657 – 14 July [3 July] 1704)
소피야의 섭정 생활을 그리 원만하게 시작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세력다툼을 하던 귀족들이 여전히 소피야에게 고개를 숙인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섭정이 된 초기 소피야는 반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전에 그녀를 지지했었던 코반스키가 그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코반스키는 군대를 지휘했엇기에 소피야에게 그의 반란은 큰 타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소피야는 샤크로비티의 지원을 받아 코반스키를 제압했었으며 소피야는 섭정으로써의 지위를 확고하게 됩니다.
이반 코반스키
소피야의 섭정기동안 러시아는 여러가지 사건들에 맞닥들이게 됩니다. 소피야의 섭정기에 권신들이었던 샤크로비티나 골리친등이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소피야는 귀족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소피야의 통치기에 귀족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시행했었는데 이를테면 도망친 농노들에 대해 느슨한 처벌을 하는 등의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대외정책에서는 폴란드나 중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했으며 투르크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소피야는 서유럽식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바로크 스타일의 건축물을 짓기도 했었으며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피야의 섭정기는 시한이 정해져있었습니다. 소피야가 섭정이 된 상황은 동생들이 어렸으며 또 미혼이라는 조건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동생들은 성인이 되었고 결혼해서 자녀를 얻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소피야가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기도 햇었습니다.
소피야의 이복동생인 표트르와 그의 주변 친척들은 오래도록 숨죽이고 시간이 가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표트르는 16살이 되었을때 모스크바의 유력 가문 여성과 결혼했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었죠. 소피야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기에 동생을 경계했으며, 스스로 "짜리나"가 되려하기도 합니다.
소피야의 동생
표트르 대제
1690년대
하지만 결국 17살의 표트르는 누나인 소피야를 실각시켰으며, 샤크로비티를 처형하고 골리친을 유배보내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표트르가 권력을 장악한 뒤 소피야는 수녀원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소피야는 처음에는 수녀로써 서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표트르의 감시하에 지내게 되죠.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으며 그녀를 복귀시키려는 시도 역시 존재했습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서유럽의 견학을 위해 러시아를 떠나있는 동안 소피야는 복귀를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그녀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제압당했으며 그들의 시체가 소피야가 볼수있는 곳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소피야는 수녀가 되므로써 간신히 처형만을 피할수 있었습니다. 수녀가 된뒤 소피야는 엄격한 계율에 따라 부활절을 제외하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뺏긴 후의 소피야
19세기 그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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