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화요일 : 에스파냐

에스파냐의 인판타들...(52)인판타 베아트리스 : 알폰소 13세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7. 1.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알폰소 13세의 딸들합니다.


..이시리즈 다 끝나가는데 이제 뭐하죠-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52)인판타 베아트리스 : 알폰소 13세의 딸 (첫번째)


 


인판타 베아트리스

치비텔라-체지 공비

 Infanta Beatriz of Spain, 

Princess di Civitella-Cesi

(Doña Beatriz Isabel Federica Alfonsa Eugénie Cristina Maria Teresia Bienvenida Ladislàa de Borbón y Battenberg) 

(22 June 1909 – 22 November 2002) 


인판타 베아트리스 이사벨 페데리카 알폰사 에우헤니 크리스티나 마리아 테레시아 비엔베니다 라디슬라는 1909년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3세와 그의 부인인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중 베아트리스라는 이름은 외할머니이자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이었던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이사벨은 아버지의 고모이자 이사벨 2세의 장녀인 인판타 이사벨의 이름을 딴것이었고 페데리카라는 이름은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었던 하노버의 프레데리카의 이름을 딴 것이었는데 프레데리카의 집에서 알폰소 13세와 에나 왕비가 약혼을 했던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알폰사는 아버지의 이름을 딴것이었으며 에우헤니는 에나 왕비의 대모이자 에스파냐 출신이었던 유제니 황후의 이름을 딴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친할머니 이름을 딴것이었죠. 



알폰소 13세와 에나 그리고 에나의 어머니인 베아트리스 공주



인판타 베아트리스는 영국인 보모에게서 교육을 시작했는데 프랑스어와 영어 에스파냐어를 배웠으며 2년후에 태어나는 여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함께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둘은 어머니와는 영어로 대화를 했으며 아버지와는 에스파냐어로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는 동생과 함께 잠깐 사립학교를 다녔지만 곧 에스파냐 궁정 방식에 따라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는 언어와 역사, 종교등을 공부했고 피아노와 춤도 배웠습니다. 베아트리스의 부모는 모두 야외활동을 좋아했고 이것은 베아트리스와 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에게도 전해집니다. 베아트리스는 수영을 잘했고 테니스와 골프를 쳤으며 승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또 겨울에는 겨울 스포츠를 즐겼다고도 합니다.



베아트리스와 마리아 크리스티나


에스파냐의 인판타로 베아트리스는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여러 자선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 특히 1920년대 후반 동생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함께 여러 공적인 행사에 참여했으며, 여러 기관을 세우고 후원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특히 둘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동물 보호등에 관한 일을 했으며, 또한 적십자사일에 열성이었던 어머니를 따라 적십자사의 일에 참여했으며, 간호사로써 수업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인판타 베아트리스는 1927년 성인으로 사교계에 데뷔했었습니다. 왕가의 여성이 사교계에 데뷔하는 과정은 결국 그녀가 남편감을 찾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판타 베아트리스는 동생과 마찬가지로 혼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에 흐르는 혈우병 때문이었습니다. 베아트리스의 어머니인 에나 왕비는 혈우병 보인자였으며 아들 둘이 혈우병환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때문에 에나의 딸들인 베아트리스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보인자일 가능성이 있었죠. 이 상황은 둘의 아버지인 알폰소 13세가 딸들이 에스파냐 왕족들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이 혈우병 환자로 태어난 것에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런 유전병을 물려준 아내를 원망했었으며, 심지어 장모인 베아트리스 공주와는 말도 안했다고 합니다.(..다 알면서 결혼해놓고..--;;) 

이런 알폰소 13세는 혈우병이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딸들의 결혼에 대해서 제한을 뒀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훗날 망명하는등의 일이 일어났을때 베아트리스가 적당한 남편감을 찾는데 애로사항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외손주들과 함께 있는 베아트리스 공주


아마도 혼담이 별로 진척없는 가운데, 1929년 20살이 된 베아트리스는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당시 수상이자 1대 프리모 델 리베라 공작인 미구엘 프리모 델 리베라의 아들인 미구엘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결혼하기에는 신분이나 정치적인 문제가 너무 컸고 결국 1930년 수상은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알폰소 13세와 미구엘 프리모 델 리베라(수상)


이후 인판타 베아트리스의 삶은 복잡하게 됩니다. 바로 알폰소 13세가 퇴위하고 에스파냐는 공화국이 되었기 때문이었죠. 인판타는 아버지와 가족과 함께 에스파냐를 떠나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