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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50)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 알폰소 12세의 딸 (세번째)

엘아라 2016. 12.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새해특집...ㅠ.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50)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 알폰소 12세의 딸 (세번째)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아스투리아스 여공

María de las Mercedes, 

Princess of Asturias 

(María de las Mercedes de Borbón y Habsburgo-Lorena) 

(11 September 1880 – 17 October 1904),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부르봉-양시칠리의 카를로스와 자주 만났으며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지게됩니다. 그리고 그와 결혼하게 되죠. 하지만 카를로스가 인판타 메르세데스와 만난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이것은 인판타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와 고모였던 인판타 이사벨이 그를 인판타 메르세데스의 남편감으로 정했던 것입니다


부르봉-양시칠리의 카를로스는 양시칠리의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손자로 카를로스의 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사는 인판타 메르세데스의 어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의 고모이기도 했었습니다. 또 인판타 메르세데스의 고모였던 인판타 이사벨은 카를로스의 숙부와 결혼했었던 사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이런 가족관계 덕분에 카를로스는 에스파냐 궁정에서 어느정도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부르봉-양시칠리 가문 출신으로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3세의 후손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만약 알폰소 13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인판타 메르세데스가 여왕이 된다고 하더라도 부르봉 가문의 후손인 카를로스의 후손이 에스파냐 왕위를 이어받을것이기에 왕가가 바뀌는 것 역시 막을수 있었기에 괜찮은 신랑감이었다고 합니다. 



부르봉-양시칠리의 카를로스




카를로스는 잘생기고 신중한 성격에 인판타처럼 수줍음 많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반했고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카를로스와 메르세데스의 약혼이 발표되었을때 에스파냐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카를로스는 관계가 없었지만 카를로스의 아버지였던 카제르타 백작 알폰소는 카를리스트들을 지지했었던 인물이었으며 장군으로 카를리스트측에 서서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카를로스와 메르세데스의 결혼은 카를리스트를 지지하는 인물들이 에스파냐 왕위에 너무 가깝게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카를로스의 이름마저 카를리스트들을 연상시키는 이름이기도 했었습니다.  둘의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기 까지 했었습니다.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그와의 결혼에 대해서 고모인 파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전 그와 결혼하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하지만 저는 화가나는데 이 모든 일을 복잡하게 만들것이 .... 그이의 아버지가 돈 카를로스를 지지했기 때문이죠."


결혼식때 시위가 일어날것을 우려해서 행사를 매우 축소했다고 합니다만 결혼식은 아무일 없이 무사히 치뤄졌다고 합니다. 



메르세데스와 카를로스의 결혼식


둘은 결혼후 마드리드에서 살았으며,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의 근처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둘사이에서는 곧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동생인 국왕이 미혼인 상황에서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아이들이 태어난 것은 왕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낳은뒤 1904년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세번째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미 두 아들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딸이길 바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신중이었던 인판타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었으며 결국 1904년 10월 아이를 조산합니다. 인판타가 바라던 딸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조산하고 산모의 건강이 악화되었기에 처음에 사람들은 아이가 사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이의 외삼촌이었던 국왕 알폰소 13세는 조카가 살아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살았지만 어머니의 건강은 더 악화되었고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사망합니다.



메르세데스


인판타가 죽은뒤 인판타의 세아이들은 외할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의 보호아래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인판타의 장남은 비록 "아스투리아스 공"칭호를 받지는 않았지만 외삼촌에게 후계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추정왕위계승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난 사실은 인판타 메르세데스가 죽은뒤 그녀의 남편은 파리백작의 딸인 루이즈 도를레앙과 재혼했는데, 루이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중 첫번째 아내의 이름을 딴 딸이 있었습니다. 부르봉-양시칠리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 후에 알폰소 13세의 아들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과 결혼했고 그녀의 아들이 바로 에스파냐의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