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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48)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 알폰소 12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6. 12.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그러고 보니 에스파냐의 인판타들 다 해가는군요.

이제 어느나라 해야할까 고민입니다.

첫번째는 잉글랜드, 두번째는 프랑스,세번째는 이베리아반도...이렇게 고민중에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48)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 알폰소 12세의 딸 (첫번째)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아스투리아스 여공

María de las Mercedes, 

Princess of Asturias 

(María de las Mercedes de Borbón y Habsburgo-Lorena) 

(11 September 1880 – 17 October 1904),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 1880년 에스파냐의 국왕 알폰소 12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테센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알폰소 12세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결혼했으며, 마리아 크리스티나 역시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둘의 결혼은 매우 불행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알폰소 12세와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


인판타 메르세데스가 태어났을때 에스파냐 왕가에서는 매우 큰 실망감을 감출수 없었다고 합니다. 메르세데스가 태어나기 팔개월전쯤에 알폰소 12세는 정부였던 옐레나 산스로부터 아들을 얻었었는데, 정식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는 딸이 태어나 실망한 남편에게 딸의 이름을 남편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첫번째 아내의 이름을 따서 짓자고 했으며 이때문에 새로태어난 인판타는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이사벨 테레사 크리스티나 알폰사 María de las Mercedes Isabel Teresa Cristina Alfons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었습니다. 아이의 대모는 망명생활에 있던 이사벨 2세로 그녀는 적자인 첫 손녀가 태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 에스파냐에 왔었으며 아이의 대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알폰소 12세의 첫번째 부인

인판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알폰소 12세의 장녀로 왕위계승자의 칭호인 "아스투리아스 여공"이라는 칭호를 받아야했습니다. 하지만 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수상인 안토니오 카노바스 데 카스티요는 왕비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좋아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이사벨 2세가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에스파냐에 엄청난 혼란이 초래했던것을 떠올리면서 인판타 메르세데스에게 "아스투리아스 여공"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미루게 됩니다. 결국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태어난 다음해인 1881년이 되어서야 "아스투리아스 여공"이라는 지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인판타 메르세데스가 태어난 다음해에 그녀의 여동생인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가 태어납니다. 이 상황은 메르세데스의 아버지인 알폰소 12세가 매우 실망하는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그는 이미 정부로부터 두명의 아들을 얻었었는데 왕비는 계속 딸을 낳았기에 비교하면서 더 실망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안그래도 정략결혼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와 알폰소 12세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왕비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에스파냐쪽 신하들의 견제에 화를 내기도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왕비는 1883년 두 딸을 데리고 홀로 친정으로 가서 친정식구들을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1884년이 되면서 알폰소 12세의 건강은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문의 많은 사람들처럼 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이것은 그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1885년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는 아이를 임신합니다만, 알폰소 12세의 건강은 더욱더 악화됩니다. 결국 1885년 11월 알폰소 12세는 임신한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사망합니다.



알폰소 12세의 죽음


알폰소 12세가 죽은후 에스파냐 상황은 좀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법대로라면 아버지가 죽은뒤에 후계자인 인판타 메르세데스가 에스파냐의 여왕이 되어야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가 임신중인 아이가 아들일경우 문제는 더 복잡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왕위를 이을 아들이 태어날수도 있는 상황에서 메르세데스가 왕위를 잇는것은 안그래도 이사벨 2세가 즉위한뒤 오래도록 내전을 했던 에스파냐에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가 아이를 낳을때까지 왕위는 비어있게 됩니다. 왕비가 딸을 낳는다면 왕위는 메르세데스에게 이어지겠지만 아들을 낳는다면 왕위는 그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었죠.


1886년 5월, 아버지가 죽은 6개월후 인판타 메르세데스의 동생이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에스파냐의 국왕이 될 남동생이었죠.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알폰소 13세가 되었으며 태어나면서 국왕인 아이였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인판타 메르세데스는 여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미혼인 동생의 후계자로써 "아스투리아스 여공"지위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섭정으로써 선서 중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와 그 곁에 있는 두 딸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