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아무리 날라리 공주님이라도 자서전에 자기 애인들 이야기는 안 적는군요-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44) 인판타 아우랄리아 : 이사벨 2세의 딸(세번째)
인판타 아우랄리아
갈리에라 공작부인
Infanta Eulalia, Duchess of Galliera
(María Eulalia Francisca de Asís Margarita Roberta Isabel Francisca de Paula Cristina María de la Piedad)
(12 February 1864 – 8 March 1958)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에스파냐 왕녀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별거하기 전부터 여러 애인들이 있었으며 그녀는 애인들과의 이야기로 전 유럽 궁정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인판타 아우랄리아의 애인중 한명이었던 자마텔 백작 구스타프 루이는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빅토리아 마리(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이었던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의 손녀)와 결혼했었는데, 빅토리아 마리는 남편이 오래도록 인판타 아우랄리아와 연애관계였으며 자신과 결혼한 이유가 재정적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빅토리아 마리와 자마텔 백작의 결혼은 깨지는데 결혼이 깨지기전 빅토리아 마리의 남동생이었던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카를은 누나의 명예를 위해 매형과 결투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빅토리아 마리
그녀는 19살때 임신했는데 상대는 유부남이었던 시종이었습니다.
대공가에서 이를 쉬쉬했지만, 해고당한 시종이 소송을 벌리면서 이 사건은 대중에 공개되게 됩니다.
빅토리아 마리의 친인척들은 모두 그 시종이 어린 빅토리아 마리에게 몹쓸짓을 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이런 상황은 빅토리아 마리가 프랑스 출신의 백작밖에 되지 않는 자마텔 백작과 결혼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자마텔 백작의 연애는 빅토리아 마리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대립하던 에스파냐에서 왕실을 지지하는 보수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었으며 이런 상황은 안그래도 스캔들로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인판타에 대해 왕가에서 껄끄럽게 여기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압에 맞서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인판타에 대해 동경하는 사람들 역시 있었습니다.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남편과 별거한뒤 그리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쓰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갈리에라 공작은 그녀만큼이나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다녔으며 가문의 재산을 펑펑쓰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인판타 아우랄리아가 비록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억압에 대한 자유를 찾는 모습으로 비춰진 반면, 갈리에라 공작의 스캔들은 그냥 공작의 "찌질함"을 드러내보이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입니다.
갈리에라 공작 안토니오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많은 책들을 썼는데, 여러곳을 다니면서 만났던 왕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나 아니면 공화주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등을 적은 책을 썼었습니다.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조카인 알폰소 13세가 퇴위하고 에스파냐를 떠난 뒤에도 에스파냐에 머물렀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아들이었던 알폰소는 사촌이었던 알폰소 13세를 따라 국외로 나갔지만 말입니다.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1958년 자신의 집에서 사망했습니다.
인판타 아우랄리아와 갈리에라 공작 안토니오 사이에서는 두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장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갈리에라 공작 지위를 이어받은 알폰소였습니다. 그는 에스파냐 왕가에 매우 가까운 친척이었는데 그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에나 왕비의 사촌이었던 에든버러의 베아트리스(베이비 비)와 결혼했습니다. 베이비비는 알폰소 13세와의 스캔들에 연루되어서 추방당했는데 그녀의 남편 역시 아내와 함께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오래도록 베이비비가 알폰소 13세와 연애관계이거나 적어도 여자들을 소개해서 사촌인 에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알려져있었습니다만, 에스파냐에서 발간된 에나 왕비와 베이비비의 편지에서는 둘이 매우 다정한 사이로 에나가 늘 베이비비를 믿었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그리고 베이비비가 에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주장했던 전기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했습니다.-0-;;; 하지만 그거 전 세계에 다 퍼졌는데 어떻게 수습하냐고요...ㅠ.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구만...)
아우랄리아의 아들과 며느리
갈리에라 공작 알폰소와 에든버러의 베아트리스
차남은 루이스 페르난도로 오래도록 미혼으로 지내다가 1930년 41살일때 72살이었던 마리 콘스탄체 샤를로트 세이와 결혼했습니다.(-0-;;;) 이 결혼에 대해서 마리의 가족들은 그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재혼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만 어쨌든 결혼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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