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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41) 인판타 마리아 데 라 파스 : 이사벨 2세의 딸(세번째)

엘아라 2016. 10.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41) 인판타 마리아 데 라 파스 : 이사벨 2세의 딸(세번째)




인판타 마리아 데 라 파스

바이에른의 왕자비

María de la Paz of Spain 

(María de la Paz Juana Amelia Adalberta Francisca de Paula Juana Bautista Isabel Francisca de Asis de Borbón y Borbón

(June 23, 1862 – December 4, 1946)


인판타 파스는 뮌헨에서 주로 자선사업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님펜부르크 근처에 가난한 어린아이들을 위한 기관을 세웠으며, 님펜부르크 성안에 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또 파스는 뮌헨에서 예술품을 수집해서 전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예술품들은 1930년대 화재로 불탔다고 합니다.) 인판타 파스는 남편과 함께 예술의 후원자로 파스의 집에는 예술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중 한곳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결혼후 생애 대부분을 뮌헨에서 지내게 된 파스는 에스파냐에 있는 가족들과도 늘 교류를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있었기에 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지냈는데, 올케인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는 물론 조카들과도 매우 다정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조카였던 알폰소 13세는 이 고모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파스는 아들인 페르디난트가 파스의 조카이자 알폰소 12세의 딸이었던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하면서 에스파냐에 거주하게 되자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들을 보러 에스파냐에 자주 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에스파냐 왕실행사에도 참가했는데 조카인 알폰소 13세가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에나)와 결혼할때 결혼식에도 참석했었습니다.



파스와 남편 루드비히 페르디난트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파스는 님펜부르크에 머물게 됩니다. 그녀의 둘째아들인 아달베르트는 장군으로 전쟁에 참가했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으며 많은 독일의 지역들처럼 바이에른 역시 공화국이 되었으며 파스의 생활은 이전보다 나빠지게 됩니다.


왕정은 폐지되었지만, 파스와 가족들은 님펜부르크에서 그대로 사는 것이 허락됩니다. 비록 독일에서의 재산은 거의 없어진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파스는 에스파냐에서 받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에도 어느정도 토지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나마 파스와 그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1931년 파스의 조카인 알폰소 13세가 퇴위한뒤, 에스파냐쪽 지원이 끊어지게 되면서 파스 역시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게다가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파스의 삶은 더 힘들어지게 됩니다. 아마도 파스는 1차대전이전부터 공화주의자등에 호의적이었으며 이런 그녀가 히틀러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녀의 가족들은 바이에른 왕가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으며, 파스의 아들인 아달베르트와 손자 둘은 2차대전때 독일군으로 참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2차대전 중반 독일의 옛 왕족들에 대한 의심을 강화했고, 옛 왕족들은 모두 군에서 나와야했었습니다. 그리고 게쉬타포는 파스의 집을 뒤지고, 에스파냐에서 오는 그녀의 개인 편지를 검열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인판타 파스와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페르디난트


인판타 파스는 1946년 뮌헨에서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사망합니다. 


인판타 파스


인판타 파스와 루드비히 페르디난트 사이에서는 모두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첫째는 아들인 페르디난트로 파스의 조카였던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와 결혼했으며, 에스파냐의 "인판테"로 에스파냐에서 살았습니다. 둘째아들인 아달베르트는 군인으로 바이에른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지프리트 아우프 부텐하임 백작의 딸이었던 아우구스테였는데, 아우구스테의 어머니는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마리로 바로 시씨황후의 외손녀였습니다. 막내는 딸인 필라르로 인판타 파스는 가장 친한 언니였던 필라르의 이름을 딸에게 붙여줬다고 합니다. 필라르는 미혼으로 지냈는데 그녀는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으며, 후에 사촌이었던 알폰소 13세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