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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40) 인판타 마리아 데 라 파스 : 이사벨 2세의 딸(두번째)
인판타 마리아 데 라 파스
바이에른의 왕자비
María de la Paz of Spain
(María de la Paz Juana Amelia Adalberta Francisca de Paula Juana Bautista Isabel Francisca de Asis de Borbón y Borbón)
(June 23, 1862 – December 4, 1946)
인판타 파스는 형제 자매들중 어머니 이사벨 2세를 가장 많이 닮은 자녀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키 작고 뚱뚱했다고 합니다. 인판타 파스는 언니인 이사벨이나 여동생인 아울랄리아와 달리 강한 성격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지만 남편이 죽은후 재혼을 거부할정도로 의지가 굳었으며, 아우랄리아는 당대 최고의 날라리 공주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판타 파스는 단순하고 상냥했으며 순종적이었습니다. 파스는 낭만적이고 예술적 감각도 있었기에 시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그림도 잘 그렸었습니다. 역사학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서 하프를 켰으며,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또 매우 신앙심이 깊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인판타 파스의 혼기가 차자, 곧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이었던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페르디난트 왕자와 혼담이 진행됩니다. 루드비히 페르디난트의 어머니는 인판타 아말리아 필리피나로 이사벨 2세의 사촌이자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의 여동생이었습니다. 인판타 아말리아는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대녀인 인판타 파스가 결혼하길 바랬으며 이를 위해 이사벨 2세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에게 편지를 썼고, 둘은 이 결혼 계획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파스의 고모였던 인판타 아말리아와 그녀의 남편인 바이에른의 아달베르트
후에 파스의 시부모
1880년 여름, 인판타 아말리아는 자녀들을 데리고 오빠와 올케언니를 만나러 파리로 갑니다. 아마 이것은 혼담이 어느정도 진행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폰소 12세는 왕위에 오르기전 함게 공부했던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를 에스파냐로 초청했다고 합니다. 파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루드비히 페르디난트가 자신을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가 에스파냐로 올것이며,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글을 쓰기도 햇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 역시 그가 자신의 남편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 일것입니다.
1880년 가을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에스파냐에 옵니다.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를 만난 파스는 그에게 흥미를 잃었으며 그와 결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루드비히 페르디난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2년이 더 지난뒤 파스는 결국 루드비히 페르디난트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그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사실 2년동안 파스에게 혼담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며 이런 상황은 결국 파스가 이 혼담을 받아들이게 했다고 합니다.
1883년 1월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에스파냐로 와서 다시 파스에게 청혼했으며 파스는 이 청혼을 수락했습니다. 1883년 4월 2일 파스와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마드리드의 왕궁에서 결혼했으며 파스는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을 포기하는 대신 15만 페스타(유로 이전의 에스파냐 화폐단위)의 연금을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인판타 파스와 남편인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페르디난트
결혼후 파스는 에스파냐를 떠나 시댁이 있는 바이에른으로 가게 됩니다. 뮌헨으로 가는 도중 가족들을 만나기도 한 파스는 뮌헨에서 시댁 식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국왕 루드비히 2세가 가장 좋아한 친척이었으며 이때문에 파스 역시 루드비히 2세와 친분을 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왕가 사람들은 물론 바이에른 공작 가문 사람들까지 파스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아마도 모나지 않는 성격이었던 파스는 다른 친척들과도 잘 지냈던듯합니다.
파스의 남편인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정치적으로 복잡했던 궁정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그는 군인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거나,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으며, 또 음악을 매우 사랑해서 뮌헨 왕립 교향악단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사람들과 잘 지냈던 파스 역시 정치적 문제가 있는 궁정생활과는 멀리 떨어져있었고 결국 파스와 그녀의 남편은 님펜부르크에서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살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음악과 예술을 사랑했기에 에스파냐에서 예술가들이 자주 님펜부르크에 있는 부부를 방문하고는 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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