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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37) 인판타 이사벨 : 이사벨 2세의 딸 (네번째)

엘아라 2016. 9. 2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막 늘립니다.-0-;;;;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7) 인판타 이사벨 : 이사벨 2세의 딸 (네번째) 




인판타 이사벨

아스투리아스 여공

지르벤티 백작부인

Isabella, Princess of Asturias 

Isabel; María Isabel Francisca de Asís 

(20 December 1851 – 22 April 1931)

나이 든 후의 모습

어머니인 이사벨 2세랑 참 많이 닮은듯..-0-;;




1874년말 에스파냐에서는 이사벨 2세의 아들이자 인판타 이사벨의 남동생이었던 알폰소를 다시 에스파냐의 국왕으로 알폰소 12세로 맞기로 결정합니다. 알폰소 12세가 에스파냐로 간뒤 인판타 이사벨은 미혼이었던 동생의 후계자로써 에스파냐로 돌아가게 됩니다. 알폰소 12세와 누나인 인판타 이사벨은 에스파냐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인판타 이사벨은 동생과 에스파냐 왕가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알폰소 12세의 후계자로써 정식으로 "아스투리아스 여공"으로 선포됩니다. 후계자였던 그녀에 대해서 결혼 문제가 다시 이야기됩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20대 초반이었고 그녀의 남동생은 미혼이었기에 일단 후계자 문제를 위해 그녀가 결혼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좋은 방법이었죠. 인판타 이사벨의 전남편의 사촌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살바토르 대공이나 바이에른쪽 인척이었던 바이에른의 아르눌프 왕자가 남편감으로 거론되었습니다만 인판타 이사벨은 이 혼담을 모두 거절합니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살길 원했으며, 알폰소 12세는 이런 누나를 존중해서 더이상 이사벨의 혼담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폰소 12세


인판타 이사벨은 동생이 미혼이었을때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갔으며, 어린 여동생들의 교육에도 힘썼었습니다. 이사벨의 여동생들중 마리아 데 라 파스는 언니의 뜻을 따라 평범한 왕족으로 성장했지만 막내동생이었던 인판타 아우랄리아는 이사벨의 골칫거리였다고 합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아우랄리아는 왕족으로써의 의무에 충실했던 인판타 이사벨이 보기에는 너무나 못마땅했었습니다.



세딸들과 함께 있는 이사벨 2세


인판타 이사벨은 동생인 알폰소 12세가 결혼한뒤, 사촌이자 올케가 된 왕비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에게 왕비로써 어떻게 역할을 해야할지 알려줬었습니다. 동생이 결혼한뒤에 좀더 자신의 삶을 살았지만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가 일찍 사망하면서 다시 한번 궁정에서 중심인물로 살아야했습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동생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과 재혼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남편의 외가쪽 친척들이었던 테센 공작 가문 사람들을 잘 알았으며 이때문에 테센 공작가문 출신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동생의 왕비감으로 추천했던 것입니다. 


알폰소 12세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서 인판타 이사벨은 여전히 궁정에서 의무를 수행해야했습니다. 동생의 유복자인 알폰소 13세가 태어난뒤, 인판타 이사벨은 섭정이 된 올케를 정치적으로 도왔으며 아버지를 잃은 조카들을 어머니처럼 돌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가 섭정으로 일하기 시작한 초기 매우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알폰소 12세와 마리아 크리스티나 왕비


왕족으로 매우 의무에 출실했던 인판타 이사벨은 매우 인기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인판타 이사벨은 조카의 치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었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인판타 이사벨


1931년 4월 인판타 이사벨의 조카였던 알폰소 13세가 왕위를 잃고 가족들과 함께 에스파냐를 떠냐야했습니다. 늙고 병든 인판타 이사벨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공화국 정부는 인판타에게 굳이 에스파냐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실 가족으로 의무에 충실했던 인판타 이사벨은 조카이자 자신의 군주였던 알폰소 13세를 따라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리고 알폰소 13세가 왕위를 잃은 5일후인 1931년 4월 22일 인판타 이사벨은 파리에서 사망합니다.


1991년 알폰소 13세의 손자이자 에스파냐 국왕이었던 후안 카를로스는 인판타 이사벨의 시신을 에스파냐로 이장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