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있는글들/화요일 : 에스파냐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6) 인판타 이사벨 : 이사벨 2세의 딸 (세번째)

엘아라 2016. 9.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요즘 영 집중력이 떨어지네요..ㅠ.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6) 인판타 이사벨 : 이사벨 2세의 딸 (세번째) 





인판타 이사벨

아스투리아스 여공

지르벤티 백작부인

Isabella, Princess of Asturias 

Isabel; María Isabel Francisca de Asís 

(20 December 1851 – 22 April 1931)




결혼 직후 인판타 이사벨은 남편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물론 인판타 이사벨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인판타 이사벨은 그녀의 결혼생활 내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먼저 시댁이 있는 로마로 갔으며 그 다음에는 남편의 외가인 오스트리아 궁정에도 들르게 되죠. 이후 에스파냐로 돌아올때는 프랑스를 거쳐서 나폴레옹 3세의 궁정에도 들르게 됩니다. 이때 에스파냐 정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사벨의 어머니인 이사벨 2세는 왕위를 잃을 처지에 놓였으며 이때문에 인판타 이사벨의 남편인 가에타노는 서둘러 에스파냐로 갑니다. 하지만 결국 이사벨 2세는 왕위에서 물러나야했으며 왕실가족들 모두는 망명길에 올라야햇습니다.


지르벤티 백작 부부


인판타 이사벨는 다른 에스파냐 왕실가족들처럼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합니다. 이 상황은 그녀의 남편인 지르벤티 백작에게 힘든 상황을 겪게 합니다. 지르벤티 백작은 건강이 나빴으며 정치적 문제(이탈리아에서 가문이 통치 영지를 상실한 것등)로 인해서 우울증등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에스파냐에서의 좌절감 역시 그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남편의 건강을 위해 여러곳을 다니면서 살기 시작합니다. 친척들이 있는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등을 다니면서 남편의 건강이 나아지길 바랬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1870년 여름 인판타 이사벨과 가에타노는 스위스의 루체른에 정착하게 됩니다. 인판타 이사벨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지내면서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길 바랬었습니다. 사실 가에타노의 건강은 더 나빠지고 있었으며 뇌전증을 앓고 있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가에타노의 정신적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1871년 여름 인판타 이사벨은 파리에서 친정식구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녀의 남편인 가에타노는 아내와 함께 있다가 미리 루체른에 왔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인판타 이사벨은 유산을 하게 됩니다. 힘들어했던 가에타노는 아내의 유산 소식에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것을 잃었는데 이제 자신의 아이마저 잃었던 것이었죠.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가에타노는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시도했었습니다. 이 시도는 실패했었고 이후 인판타 이사벨과 지르벤티 백작의 시종들은 백작을 절대 혼자 두게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에타노의 상태는 더 나빠졌으며 결국 1871년 11월 가에타노는 루체른에 있는 호텔에서 자기 방문을 걸어잠근뒤 총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이사벨과 가에타노


남편이 죽었을때 겨우 20살이었던 이사벨은 남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남편에 대해 애틋하게 여기고 있었던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이사벨은 다시 친정식구들이 있는 파리로 돌아갔으며 이곳에서 조용히 가족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녀는 어린 여동생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으며, 따로 살고 있던 아버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를 챙겼고 동생이자 왕위계승자인 알폰소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신경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또 남편의 이모였던 마리아 카롤리나와 자주 함께 있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판타 이사벨은 자신이 에스파냐의 인판타임을 잊지 않았으며 에스파냐 왕실이 다시 에스파냐에 돌아갈수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유력 정치가와 교류하면서 에스파냐에 다시 왕실이 복귀할수 있도록 노력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